▲ 이주은(이화여대 박물관 연구원)
한국과 터키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바가 많다. 한국전쟁에서 터키는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에 가장 많은 지원군을 보내주었던 국가였기에 우리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이는 터키인들이 보여준 오랜 우정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자주 보았던 돌궐족이 바로 투르크족으로 터키인들의 조상이다.

돌궐제국은 고조선 시대 연맹부족으로서 고구려와 손을 잡고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낸 적이 있었다. 우리의 역사책에는 돌궐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터키의 역사책에는 한국과 터키가 역사 속에서 함께 힘을 모았던 형제관계였음이 밝혀져 있다고 한다. 터키어 또한 우리 언어와 같은 어족인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터키어는 20세기 초 문자개혁 이후에 알파벳으로 표기법을 바꾸기는 했지만, 말의 어순이 우리말과 같으며, 조사가 있는 것도 똑같다.

터키와 한국 간의 유사점은 생생한 근대사로 그대로 이어진다. 케말 파샤(장군)로 알려진 터키의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주도된 20세기 초반의 근대화 과정은, 박정희 정권 시대에 겪었던 우리의 근대화 경험과 비교될 수 있다. 자주적인 근대화를 위한 급진적 개혁은 두 국가의 국민에게 공통된 과제였으며, 그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라는 개념이 매우 확실하고 견고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양국 모두 과거의 획일화된 문화에서 벗어나서 세계화된 환경 속에서 더 많은 예술적 가능성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사회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양국에서 미술은 과연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 그 흐름과 단면을 비교하면서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견지에서, 부평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번 한국·터키 50주년 수교 기념 전시는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현대미술사의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전시라고 생각된다.

이 전시는 양국 작가 중 일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을 각각 25명씩 50명을 엄선하여 기획되었다. 작품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추상 및 개념미술이 어떻게 자국의 정서에 맞게 해석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 다음으로는 1990년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설치미술과 전통적 형식을 넘어선 조각들, 그리고 일상과 현실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구상성을 지닌 작품들, 마지막으로 매체의 효과를 중시하는 비디오와 사진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시대의 애환과 함께 현대미술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다. 획일적인 근대화 과정과 서구문화의 영향을 겪어온 한국인과 터키인의 감수성이 작품 속에서 펼쳐진다. 양국 모두 격변의 사회 속에서 한편으로는 미술에 대한 서구식 모더니즘의 개념을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부단하게 노력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작을 통해 평가해보건대, 오늘날의 미술계는 강렬한 메시지나 정치적 색채보다는 주변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아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대중사회 속에서 잔잔한 소통을 시도하는 작품들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