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 봉사 개천 나무라는 식으로 말하자면, 박사라는 '명예'가 문제의 근원이다. 그리고 정당한 노력과 성과 없이 가짜를 탐하는 그 허욕이 문제다. 그러지 않고서야 체육인이나 미술인까지도 굳이 그런 시비의 여지를 무릅쓰고 박사가 되려고 할 리가 없다. 심지어 성직이라 할 목사들 중에도 편법 내지 가짜 박사가 적지 않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거기에는 표절이나 대필이 으레 한몫을 하게 마련이다. 표절은 남의 글을 훔쳐다가 제 것처럼 써먹는 문화절도 행위다. 대필은 남을 시켜서 대신 글을 쓰게 하는 수법으로서, 대개 특수관계나 금전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표절하는 만큼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한층 더 나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비법이 작용한다. 석·박사의 92%가 논문 부정을 저질렀거나 본 적이 있다고 하는 통계도 나왔었다.
저작권법 분야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올해에 적지 않은 충격을 경험했다. 일년 내내 저작권 관련 기사가 매스미디어를 장식했다. 그 중에는 FTA 협상에 연관된 저작권법 개정 논의나 정보의 디지털화에 따른 법적 분쟁 대응 등 전향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낯부끄러운 구시대적 고질도 만만치 않았다. 표절과 대작의 치부가 언론과 사회의 일대 관심사로 부각되어 심지어 대대적인 톱뉴스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부총리나 대학 총장 같은 고위직 인사의 표절 의혹에 대한 융단폭격식 성토 기사는 우리나라 저작권 풍토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에 안 드는 상대방(고위직)을 무너트리는 데 저작권 문제를 악용한 선례도 남겼다. 우선 특정 인물들이 고위직에 오르기를 전후하여 표절 의혹에 휩싸였으며, 그들이 그 자리를 물러나자 공세는 그날로 중단되었던 것이다. 표절 문제가 진상과 책임 규명보다는 마땅치 않은 상대방에 대한 요격용 신병기로 위력을 발휘하여 그때마다 성공(?)을 거둔 것을 보고 두어 가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학계를 비롯한 각 분야에 표절이 광범하게 고질화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개탄을 했다. 불운하게도 표적이 되어 밀려났던 인사들은 우리나라 학계에서 실력과 명망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리고 그런 병마를 어떻게 하면 퇴치시킬 수가 있을까?
우선, 가짜 박사의 허상을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다. 학위와 무관한 저술에서의 표절과 대필에서는 장본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길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일 뿐이어서 효험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득이 타율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데, 부정이 드러난 경우에는 어떤 종류이든 불이익이 가해져야 한다. 여기에는 인사상으로나 행정상으로 그래야 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민사·형사상의 책임까지도 물어야 한다. 근자에 한국행정학회가 학술논문 표절방지규정을 마련하여 만일 표절이 밝혀질 경우에는 공개사과, 5년 이하 학회지 기고 게재금지, 회원자격정지 등의 불이익을 주기로 한 것은 하나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또한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에서 저작권 존중에 대한 계몽교육을 하는 방안도 필수적이다. 최근 서울대학교가 오는 새 학기부터 '학문과 과학 연구윤리' 과목을 신설하여 전교생(학부)의 교양과목으로 수강하도록 한 것은 다른 대학이나 연구단체 및 조직에서도 모범이 될 만한 선례라고 할 것이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이런 문화적 절도와 문화적 사기행위가 뿌리뽑히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위장, 위계, 위선 따위는 자신을 속이면서 세상을 속이는 중첩적 거짓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때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무슨 이득을 얻을지 몰라도, 마침내는 실체가 드러나 엄청난 재난으로 되돌아온다는 인과법칙을 알아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