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공동대표)
바다는 그들의 밭이었다. 날이 추우나 더우나 동녘이 트면 그곳으로 나가 저녁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거나 양식장에 가서 고기나 굴, 미역, 김을 키웠다. 아니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거나 주꾸미를 잡았다. 어김없이 일한 만큼 양식을 주던 그 바다에 어느 날 시커먼 기름 벼락이 떨어졌다. 그들의 일터를 죽음의 바다로 만든 것이다.

바다를 찾는 이들에게 밥도 팔고 잠자리를 빌려줘서 숱한 이들이 먹고 살았다. 그런데 그 백사장이 흑사장으로 변해 버렸다. 바다가 제 모습을 찾으려면 20∼30년은 걸린단다. 죽은 바다를 찾는 발길이 끊길테니 기름재앙이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평생 일자리를 약속했던 바다에는 폐허의 삭풍만 몰아칠 판이다.

TV 화면에는 기름띠에 맞서 싸우는 인간띠가 연출된다. IMF 사태때 금모으기에 나섰던 모습을 떠올리는 감동어린 장면이 날마다 이어진다. 주말도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시도 잊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손에 손을 잡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학교가, 교회가, 직장이 모두 하나되어 맨손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걷어낸다. 누선을 자극하는 감동의 연속이다. 그런데 환경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들은 강 건너 불보듯 한다. 크레인을 실은 부선과 예인선 소유주인 삼성중공업, 화주인 현대오일뱅크,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주는 사과의 말 한마디 하지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사과하면 피해 보상에 대해 책임질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일 것이다. 보험금을 둘러싼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사고 원인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고 결과에 대해서는 도덕적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사고 원인과 책임소재는 수사와 검사를 통해 밝혀진다. 피해 어민과 자영업자의 물질적 보상은 법적 절차에 따른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사과나 위로의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추위를 무릅쓰고 방제작업에 나선 그 숱한 이들과 제 일처럼 걱정하는 국민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인가?

크레인선과 예인선을 잇는 철재 와이어 로프가 끊어지지 않았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조선이 이중선채(double hull)였다면 사고가 났더라도 기름이 유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해양수산청과의 교신에 차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그 뒤의 일이다. 그런데 언론은 사고 당사자의 무책임한 자세는 질타하지 않고 방제작업만 보도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사고 예방을 위해 이중선체가 2010년부터 실시된다. 그 시한에 맞춰 단계적으로 이용률을 높여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었다. 2007년 1∼11월 문제의 현대오일뱅크가 91회중 50회, S-oil은 93회중 89회를 단일선체로 수송했다니 말이다. 대형 사고에 무방비였다는 뜻이다. 초동대처도 엉망이고 종합적인 관리체제를 갖추지 않았음이 이번 사고로 드러났다. 자원봉사자의 손에만 매달린 꼴이다.

1996년 설립됐던 해양안전방제연구본부가 노무현 정부들어 해체됐다. 해난사고 대응예비비도 지난 10년동안 큰 사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20억원에서 2억원으로 삭감됐다. 3천t급 방제선 건조사업도 감사원 지시로 중단됐다. 가장 크다는 방제선이 300t급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고 즉시 파손부위를 막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일펜스를 넘쳐난 기름을 걷어내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1995년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의 교훈을 망각했으니 사태가 커진 것이다.

바다가 통곡하는 일을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행정체계의 책임 소재를 철저히 밝혀 문책하라. 사고 당사자한테서는 모든 어업피해, 방제비용, 환경파괴 비용을 받아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