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공동대표)
"언론의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권력자는 언론을 장악하려는 유혹을 느끼는 모양이다. 박정희-전두환 정치군벌은 방송사 마이크에서 쿠데타의 출발점을 잡았다. 김영삼 정권은 언론을 포섭대상으로 삼아 유착관계를 시도했다. 김대중 정권은 세무조사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이란 불순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언론과 적대관계에서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기자실 폐쇄로 언론장악의 의도를 노골화했다.

한나라당은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방송에서 찾으려는 속내를 드러내 왔다. 그 까닭에 방송정책의 주무부처인 방송위원회 구성-운영을 둘러싸고 집권세력과 필사적인 대결국면을 연출해 왔다. 이와 함께 KBS, MBC에 대한 공격의 끈도 놓지 않았다. 또한 우군으로 여기는 3개 거대신문에 대한 엄호사격도 잊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집권에 대비해 언론판도를 어떻게 재편할지 밑그림을 꾸준히 그려왔다. 그들이 밝혀온 윤곽은 첫째가 KBS2, MBC의 민영화이다. 또 신문법을 없애 신문이 방송을 겸업하도록 길을 트겠다고 한다. KBS2, MBC를 보수신문에 하나씩 나눠 줄지 아니면 보도채널, 종합편성채널을 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방송-통신통합기구도 통신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문법의 탄생배경은 다양한 신문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시장질서를 바로잡자는 데 있다. 3개 거대신문을 빼고 나머지 신문사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공짜신문에다 그것도 모자라 경품이나 현금을 돌려 남의 독자를 약탈적으로 뺏어간 결과이다. 민주주의는 여론 다양성에 근거한다. 신문산업 진흥을 통해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게 신문법 제정 취지인 것이다.

신문유통망이 붕괴되어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곳이 많다. 신문법이 공동배달제를 담은 까닭은 그것이다. 신문사의 경영난을 덜기도 하지만 인터넷에 친숙하지 않은 계층에게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없애겠다고 한다. 지원기구도 일원화하겠단다. 이 경우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존립할지도 의문이다. 거대신문의 시장침탈로 지역언론이 고사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지역사회에 건전한 여론구심점을 형성하도록 돕기 위해 태어난 지역신문발전특별법도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언론장악이 가능했지만 디지털 시대는 한계가 있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책-규제 중심의 통합기구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로 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사권과 예산권의 독립이 중요하다.

일본은 2005년 문자활자진흥법을 제정했다. 신문활용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법이다. 일본도 젊은 세대가 게임과 영상물에 빠져 활자 읽기를 기피한다. 이대로 가면 국력이 쇠퇴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문법이 그 기능을 지녔다. 그런데 예산기획처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법 폐지는 여론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잘못된 방향이다. 북유럽 여러 나라들이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작은 신문을 정부지원을 통해 진흥하고 있다. 오지에 사는 한 사람을 위해서도 공동배달제를 실시하고 있다. 신문이 지닌 공공성-다양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대선과정에서 '21세기 미디어위원회'를 설치해 언론정책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과연 미디어위원회를 만들어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논의할 의향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야말로 21세기에 걸맞은 언론정책이라면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