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인천시 동구 만석동 대우담길 쪽방촌. 몸이 불편한 한 주민이 유모차에 의지한 채 쓰러질것 같은 쪽방촌을 걷고 있다. /임순석기자·sseok@kyeongin.com
인천 도심의 그늘에 일명 '쪽방촌'이 숨쉬고 있다. '쪽'이란 낱말은 '쪼개진 물건의 한 부분'을 뜻한다. 사람이 살고 있지만 집으로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간을 쪽방이라 부른다. 인천은 '2009 인천세계도시엑스포'를 발판으로 2020년까지 세계 일류 10대 도시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도시엑스포의 주제는 '도시'. 쪽방촌도 인천의 한 부분이자 소외된 사람들의 터전이다. 주변에는 고층아파트가 마치 벽을 쌓듯 하나 둘씩 들어서고 있다. 헐고 너절한 쪽방촌은 성장이 멈춰버린, 도심 속 '작은 섬'인 셈이다. 경인일보는 쪽방촌의 형성 과정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쪽방 사람들을 돕기 위한 지원방안 등을 '2008 인천 쪽방이야기' 기획시리즈를 통해 점검한다. <편집자주>

인천에는 모두 830여 개의 쪽방이 있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쪽방은 380세대다. <관련기사 3면>
쪽방촌은 중구 인현동·북성동, 동구 만석동, 계양구 작전동·효성동에 형성돼 있다. 이중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쪽방촌은 동구 만석동 2·9번지로, 199세대에 451명이 생활하고 있다.

만석동 2번지는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고, 9번지는 과거 부두노동자 집단숙소였다.

한국전쟁 피란민들, 뱃사람, 부두와 연탄 야적장 부근에서 일하던 짐꾼들은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새로 집을 짓거나 사택(일본식 건물)에 들어와 삶을 이어갔다.

이처럼 만석동 쪽방촌은 한 때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인천 도시의 역사와 다름없다. 지금은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 등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 됐다. 영세민의 힘겨운 겨울나기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이 된 것이다.

계양구 작전·효성동에 있는 쪽방촌에는 125세대가 살고 있다. 전체 세대 가운데 절반 가량인 61세대는 자신을 특별히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홀몸노인가구다.

작전동 쪽방촌은 경인교육대학교 옆 산비탈에 들어서 있다. 20~30년 전에는 달동네(일명 하꼬방)로 불렸다. 효성동 쪽방촌은 논과 밭, 축사가 있던 자리였다.

작전·효성동 쪽방촌은 산업화시대 산업일꾼들의 땀이 서려있는 현장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부평4공단에 중소업체들이 들어서면서 주거지가 형성됐다.

중구 인현동과 북성동에는 56세대 115명이 산다. 인현동 쪽방촌은 1·4후퇴 때 피란민을 중심으로, 북성동은 일용직 부두 노동자들이 몰려 생성됐다.

(사)내일을 여는 집 부설 인천 쪽방상담소가 파악하기로는 쪽방 주민 9명 중 2명은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다.

인천발전연구원 권현진 연구위원은 "쪽방촌 주민들은 경제적·심리적 빈곤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며 "가족해체를 경험한 경우가 많고 가족이 있어도 정서적·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