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누구인가. 크립톤성의 마지막 생존자인 그는 무한한 능력을 인간을 구하는데 쓰는 슈퍼히어로다. 그렇지만 영웅 슈퍼맨이 결코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데서 이 영화의 꿈은 시작된다.
"여기가 어디지? 과건가, 현잰가, 미랜가"라고 말하는,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 슈퍼맨은 현대사회 남들이 하지 않은 소소한 선행을 베푼다.
스스로를 '크립톤성의 마지막 생존자, 인간들의 친구 슈퍼맨'이라 부르는 하와이언 셔츠 차림의 이 남자는 분명 어느 별에서 날아와 인간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고, 괴물처럼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제지하며 횡단보도를 정리하고, 초등학교 앞 버버리맨을 물리치며, 소매치기를 끝까지 뒤따라가 잡아내는 그는 평범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하지 않는 일을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신문기사에서나마 볼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태양에서 지구를 떨어뜨리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 지구를 밀어내려 하고, 악당들이 자신이 슈퍼맨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 머릿속에 크립토라이트를 넣었다고 말하며, 조무래기 애들 앞에서 온 몸의 구멍을 막은 채 100까지 세면 슈퍼맨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과연 이 사람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럽고, 어느 누구라도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영화는 인간 세계에서 잊혀지는 것들, 인간이 파괴하는 것들을 무겁지 않게 보여주며 관객의 호응을 얻어내려 한다. 황당무계한 일을 꾀하는 '슈퍼맨'이 배우 황정민이기에 현실성을 갖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옆을 내내 지키는 다큐멘터리 PD는 바로 전지현이다. '싸움'에서 김태희는 설경구를 만나 한 수 배워보려했으나 흥행 결과는 좋지 않아 황정민을 만난 전지현이 내놓을 흥행 성적 역시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한다.
트렌디를 주도하는 'CF퀸'이 아닌, 주근깨도 가리지 않은 '쌩얼'로 출연한 배우 전지현은 평범한 슈퍼맨이 진짜 슈퍼맨으로 돼가는 과정을 지켜봐야하는 관찰자적 캐릭터를 연기한다. 관찰자는 직접 사건에 뛰어들기 힘들다. 때문에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건 큰 부담이었을 터.
"연기에 초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던 전지현은 확실히 전작과는 다른 모습으로 서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엽기적인 그녀'의 풋풋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상을 아는 듯한 과격한 언행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전지현의 노력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영화는 황정민이 슈퍼맨으로 등장하는 전반부와 상처받은 인간 이현석이 되는 후반부를 확실히 구분한다. 그리고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너무 많은 일들을 쏟아낸다. 마음 편하게 웃으며 봤던 가벼움은 '1980년 광주'까지 등장하며 무게감으로 확 반전을 시도한다. 어느덧 재능있고 의식있는 감독에게 '80년의 광주'는 어떻게라도 담고 싶은 화두인가 보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암울한 시대와 비정한 세상에 대한 냉철한 시선으로 관객의 양심에 비수를 꽂다 '그래도 믿을 건 인간'이라는 믿음으로 막을 내린다. 또한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정의감이 미래를 바꾼다'는 의식을 관객이 갖기를 희망한다. 다만 설득의 도가 지나치다는 인상.
캐릭터의 완성도는 슈퍼맨, 즉 황정민에게 집중됐다. 그래서 전지현이 연기한 송수정은 내내 슈퍼맨과 함께 있음에도 겉도는 인상이다.
인간의 거짓 진실을 담는데 지친 다큐멘터리 PD 송수정은 어느날 자신을 슈퍼맨으로 믿고 있는 이상한 남자 슈퍼맨을 만난다. 오지랖넓게 사람들을 도와주는 슈퍼맨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의 행동을 지켜본다.
슈퍼맨을 보며 어느덧 송수정은 그의 순수하면서도 용기있는 행동과 주장에 공감하며 자신도 모르는 새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슈퍼맨의 진실과 맞닥뜨린다. 슈퍼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현석의 사연은 송수정의 가슴을 파고든다. 마침내 슈퍼맨이 진짜 슈퍼맨이 되는 날을 지켜보게 된다.
강요하지 않은 감동이 관객을 이끌었던 '말아톤'에서 좋은 세상, 정의로운 사회를 갈구하는 목소리를 분명하게 낸 정윤철 감독의 의지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31일 개봉.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