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의정부지방법원장)
미국의 법정 영화를 보면 배심원들 앞에서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이 치열하게 진술공방을 벌이는 모습이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1994년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인 오 제이 심슨(O. J. Simpson)이 아내와 그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배심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은 마치 한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판사가 아닌 '보통 사람'이 재판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배심제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영국만의 고유한 제도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배심재판은 민주주의와 함께 태동하고 발전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시대에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것도 아테네의 배심 법정이었고, 로마 공화정 시대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오늘날 그 효용성에 대한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배심제는 세계적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고, 현재 50여 개 국에 달하는 많은 나라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금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참여재판'으로 불리는 배심재판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줄기차게 추진되어 온 사법개혁의 가장 큰 성과물로서, 직업법관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운용되던 형사재판 과정에 일반 국민을 직접 참여시킴으로써 사법의 국민주권을 실현하고 그 절차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매우 획기적인 제도라고 하겠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희망에 따라 특정한 중범죄 사건에 한하여 열리게 된다. 여기서는,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형사재판의 심리에 직접 참여한 후 법관과 독립하여 유·무죄의 판단에 해당하는 평결을 내리고, 양형에 관한 의견도 개진하며, 법관이 이를 참작하여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다만 미국의 경우처럼 배심원의 평결이 법관을 기속하지 않고 단지 권고적인 효력만 가지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당장 위헌의 소지를 피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가장 바람직한 배심재판의 형태를 찾기 위한 전단계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국민참여재판의 성공은 국민이 배심원으로 적극 참여하고, 법정에서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에 달려 있다. 국민의 참여가 없는 배심재판은 아예 상상할 수도 없고, 배심원이 공정성을 상실한 배심재판은 그 해악이 말할 수 없이 크다. 일단 배심원후보자로 선정 통보받은 국민은 정해진 재판기일에 반드시 법정에 출석하여야 한다. 이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신성한 의무에 해당하고, 만일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위반하는 경우 과태료의 제재를 받게 되기도 한다. 배심원후보자가 법정에 출석하여 소정의 절차를 거쳐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비로소 각종 증거조사를 포함한 법정심리절차에 참여하게 되고, 그 심리가 모두 끝난 후에 배심원들이 함께 평의를 거쳐 평결을 하게 된다. 배심원들은 각자의 심증을 토대로 진지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유·무죄를 판단하는데, 이때 모두 의견이 일치되면 그대로 평결하고 한 사람이라도 의견일치가 안 되면 심리한 법관의 설명을 듣고 추가 토론 후에 다수결로 최종 평결을 내리게 된다.

이제 우리 국민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사법서비스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국가의 사법제도를 운용하는 주체로서 명실상부한 사법의 주권자가 된 셈이다.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이 국민의 눈과 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실을 밝히는 상징적인 제도로서, 국가의 법치를 확립하고 또 국부를 키우는 주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하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실질적인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모든 제도의 성공여부는 그 시행 초기에 결정되기 마련이다. 시민 모두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올해 어렵게 닻을 올린 이 제도가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항해하는 것을 잘 지켜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시민 한 분 한 분이 앞으로 배심원후보자로 선정 통보받는 경우 꼭 법정에 출석하여 주권자로서 소중한 사법권을 행사하는 배심재판에 적극 참여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우리 법원은 배심원으로 참여하시는 시민들을 정중하게 환영할 것이며, 법정에서 배심원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데 아무런 장애와 불편이 없도록 모든 절차의 설명 안내와 편의 제공, 그리고 신변안전을 위한 보호조치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