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오후 인천시 동구 만석동 9 한 쪽방. 10㎡(3평) 정도의 허름한 방 하나에 한 부부가 월 10만원의 월세로 거주하고 있다. 쪽방 앞 은 차가운 칼바람을 비닐로 막은 채 생계를 유지하기위한 작업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임순석기자·sseok@kyeongin.com
쪽방촌의 하루를 시작하는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진다. 한쪽 팔만 뻗어도 앞집 창문에 닿을 수 있는 공간, 이 공간의 부피만큼 그들은 햇빛을 볼 수 있다. 23일 오전 6시 동구 만석동 2번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건너편에는 만석동 9번지 일명 '아카사키촌'이 있다. 2번지 쪽방촌 초입인 만석다방과 삼오식당 사잇길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보안등이 설치 돼 있지만 쪽방촌 안쪽은 빛이 닿지 않아 칠흑같다. 그중 공중화장실 근처가 가장 밝다. 마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은 쪽방 2~3개를 합쳐 놓은 크기로 가장 눈에 잘 띈다. 그렇다 보니 쪽방촌의 길찾기는 대부분 공중화장실 위치에서부터 시작된다.

3~4분쯤 걸었을까. 쪽방촌 한구석에서 김명희(가명·78) 할머니를 만났다. 화장실 문처럼 생긴 김 할머니네 쪽방 출입문을 열자 바로 10㎡ 가량 돼 보이는 방과 거실이 나온다. 신발을 출입문 밖에 내놓는 줄 알았더니 그냥 방 한편에 두란다. 집안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에 수북히 쌓인 부탄가스통들, 자세히보니 가스레인지가 없다. 할머니는 "한통에 1만5천원씩 하는 LP가스통을 사는 게 부담스러워 소형 버너에 밥을 해먹는다"고 했다. 벽면 도배지는 습기를 먹어 아래로 축 처져있고 방 한편에는 빗물이 흐를 수 있도록 만든 PVC관이 돌출 돼 있다. <관련기사 3면>

"한 40년 살았나… 그래도 아직 살만햐 . 4남매 중에 제구실 하는 자식새끼 하나 없으니 뭐 이렇게 사는거지"라며 할머니는 푸념한다.

2번지의 경우 홀로사는 할머니들이 많이 거주한다. 대부분 기초수급자거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

이순정(82) 할머니도 그렇다. 큰아들은 중풍으로 병원에 있고 둘째아들은 사업실패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막내 아들은 손가락이 2개밖에 없단다.

낮 12시 30분. 2번지와 9번지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2번지 경로당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대부분 하루 2끼를 먹는 이곳 노인들은 점심의 경우 경로당에 나와 공동으로 해결한다.

쌀은 봉사 단체에서 보내준 것으로, 반찬은 각자 집에서 갖고 온 것을 모아 먹는다. 이날 점심 메뉴는 콩나물김치국과 명태코다리조림. 9번지 사는 최씨 할머니가 딸네서 갖고 왔다고 했다.

이렇게 점심을 먹은 쪽방 노인들은 노인정에서 화투를 치거나 낮잠을 잔다. 오후 4시가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6~7시까지 보통 TV를 보거나 저녁 준비를 한다. 그나마 TV를 볼 수 있는 채널도 1~2개로 고정돼 있다. 오래되거나 선이 낡아 나오지 않는 방송이 많기 때문이다.

오후 8시 쪽방촌 초입에 있는 삼오식당 문은 이미 내려졌고 조그만 창문 틈새로 군데군데 켜져 있는 불도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간간이 쪽방 출입문으로 TV 드라마 소리가 새 나오기도 한다.

2008년 겨울. 만석동 쪽방촌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