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여건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집은 오래돼 헐고 너절해졌다. 사람들이 떠나고 비어있는 쪽방은 무너지거나, 범죄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 반세기를 견딘 가옥과 골목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만석동 2번지 쪽방촌에는 두 갈래 길이 나 있다.
한쪽 길은 일제시대 만석부두 노동자들이 산 일명 '사택촌'으로 이어진다. 다른 쪽 길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만든 '판자촌'으로 연결된다.
50년이 지났지만, 골목길은 그대로다. 주민들이 사는 집 또한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시멘트를 덧붙이고, 지붕을 새로 고쳤지만 그 구조는 변함이 없다.
김상순(가명·79) 할머니는 '사택'에 살고 있다. 김 할머니 집은 원래 1층이었지만, 오래 전에 이 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집 위에 한 개 층을 더 세웠다. 5㎡ 크기의 방을 둘러싼 벽면 곳곳에는 습기가 배어 있다. 천장 일부는 주저앉아 있다.
김 할머니는 "여기를 지을 때 만석부두 앞바다 모래로 흙벽을 쌓았다"며 벽이 갈라지고, 습기가 차는 이유를 설명했다.
만석동 2번지는 별도의 배수로가 없다.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골목에 떨어진 물이 방 안으로 넘쳐 흐르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은 인현동 1번지도 마찬가지다.
■ 주인없는 쪽방이 늘고 있다
최근들어 중구 인현동 1번지와 동구 만석동 2·9번지 일대에는 주인없는 쪽방이 늘어 안전, 위생, 치안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쪽방이 밀집돼 있는 중·동구 지역 쪽방촌 일대에는 재개발 보상을 노린 외지인들이 쪽방을 2~3채씩 사들이고 있다.
빈 방은 관리가 안 돼 건물이 주저앉고 있다. 실제 중구 인현동 1의398, 북성동 1가 4의23 등의 빈 쪽방은 천장이 무너지고 있다.
만석동 9번지 일명 '아카사키촌'에 사는 송민수(가명·79)씨는 "사람이 살지 않는 쪽방은 한 달이면 무너진다"며 "현재 이곳에는 2~3곳의 쪽방이 무너진 채 방치돼 있다"고 말했다.
방치돼 있는 쪽방의 정화조가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있어 비가 올 경우 위생상의 문제가 있다. 정화조가 노출돼 있으면 고양이나 쥐 등이 들끓어 전염병 위험이 높다는 게 동구보건소 측의 얘기다.
계양구 작전동 1번지 쪽방촌에 있는 쪽방 3곳 중 1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빈 방에서 자고 가는 청소년들이 많다.
이곳에서 6년 동안 산 엄익철(55) 목사는 "날이 따뜻해지면 청소년과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빈 집을 골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며 "홀로 사는 노인 분들은 불안에 떨기도 한다"고 전했다.
■ 화재에 무방비
2007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지난해 10월14일.
김상진(가명·65)씨는 만석동 9번지에 있는 집에서 야구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다 비닐 타는 냄새가 방 안에 스며들어오는 걸 느꼈다.
'누가 화덕에 쓰레기를 태우고 있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김씨는 계속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두 다리가 불편해 밖에 나가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는 냄새는 끊이질 않았다. 김씨는 마침 방에 놀러온 친구에게 바깥을 확인해 줄 것을 부탁했고, 김씨의 친구는 바로 옆집에서 불길이 솟는 걸 확인했다.
김씨는 119에 전화를 걸어 화재 사실을 알렸고, 불은 쪽방 2곳만을 태운 채 진화됐다. 불이난 집은 비교적 넓은 길가에 위치해 다행히 소방차가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만약 불이 난 집이 좁은 골목길에 있었거나 화재 신고가 늦었다면 대형화재로 이어질 뻔했던 순간이었다.
"불자동차가 와 간신히 불을 껐어요. 불이 난 집은 빈집이었어요. 거기 살던 사람들은 여름에 이사했어요. 만약 조금 늦게 발견했다면, 큰일날 뻔했어요. 여기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나무로 된 곳이 많아 금세 타버리거든요."
불이 난 쪽방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곳 주민 조상국(가명·61)씨는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불이 나는데 대형 화재로 이어질까 겁이 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전기설비업을 하고 있는 송병주(39)씨는 취재진과 함께 쪽방촌을 둘러봤다. 송씨는 "전기설비가 불완전하게 돼 있다"며 "연통에 전선을 걸어두거나, 골목에 콘센트를 빼두는 경우가 많아 합선, 누전으로 인한 화재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