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흐름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학제 간 연구가 권장되고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각 학과에 소속된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모여 연구만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상이한 학문 영역 때문에 의사소통의 문제가 컸고 연구 성과를 장기적으로 이어갈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다.
문과 내의 학제 간 연구나 이과 내의 학제 간 연구와는 달리, 문과와 이과 간의 학제 간 연구는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변변한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등학교에서부터 문과와 이과로 배움의 영역을 분리한 탓이 가장 크다. 문과의 경우는 수학이나 과학을 등한시하게 되고 이과의 경우는 국어나 역사 등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SF(Science Fiction) 작가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대부분 문과 출신인 까닭에 과학을 소재로 한 이야기 발굴과 창작에 두려움과 거리감을 느낀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잇달아 선보인 '개미'나 '뇌'와 같은 장편소설이 해당 과학 분야에서 수준 높고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작가들은 아직 과학과 문학의 행복한 만남을 꿈꾸는데 주저한다.
과학과 예술 등 여러 학문과 예술에 두루 능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로버트 루터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는 독창적인 사고를 하는 13가지 도구들이 실려 있다. 각각의 예로 제시되는 인물에는 과학자도 있고 예술가도 있어서, 13가지 도구에 두루 능하면 다빈치 형 인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13가지 생각도구를 익힌다고 한 인간이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다빈치 형 인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각의 도구들이 탄생한 삶 자체에 주목해야 하며, 그 삶의 전제들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제 간 교육기관은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 자체를 융합하려는 시도다. 교수진부터 전공이 각양각색이고 학생들도 문과, 이과, 예술가 가리지 않고 넓게 포용한다. 함께 모여 살면서 서로의 언어와 습성을 이해하고, 함께 연구할 과제를 기획 단계부터 공동으로 찾고, 그 결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 학제 간 교육기관의 목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과와 이과, 그리고 예술까지 아우르는 다빈치 형 인간을 배출하는 것을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의욕을 갖고 시작한 융합형 인재의 창출은 쉽지만은 않다. 우선 지금 가르치고 배우는 교수와 학생들이 아무리 열린 마음을 지녀도 고등학교 때부터 젖어온 문과 혹은 이과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문과 출신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다양한 과학 정보를 접한 경험이 적고, 이과 출신은 고전(古典)이나 장편 소설 등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융합형 교육에 참가한 이들이 선구자적 의지를 갖고 자신의 장점을 버리고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융합형 교육에 맞는 새로운 논문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매학기 제출되는 학제 간 학위논문을 검토하면 천차만별이다. 교육기관을 어느 학과에서 주도하여 만들었느냐에 따라 어떤 논문은 공대식이고, 어떤 논문은 인문대식이고, 어떤 논문은 예술대식이다. 기껏 2년 혹은 5년 동안 통합형 교육을 한 후에 그들을 다시 높은 학문의 벽 안으로 끼워 넣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제도와 교육 방식도 중요하지만 참된 융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움을 열망하는 젊은이들의 뜨거운 가슴이다. 일본의 독서광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에는 부와 명성을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몰두하는 원숭이 조련사, 소믈리에, 칠기 장인 등 11명의 청춘들이 등장한다. 다빈치 형 인간을 꿈꾸는 젊은이여! 도전하라. 극복하라. 아름답게 승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