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윤인수 정치3부장의 정치칼럼 '정가춘추'를 매주 수요일 게재합니다. 정치 현장 데스크로서 각종 정치 의제 및 화제의 안팎에 숨겨진 의미를 수렴해 미래를 지향하는 건설적 정치비평의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경기도지사 대진표가 사실상 확정됐다. 열린우리당 진대제, 한나라당 김문수, 민주노동당 김용한 후보이다. 민주당은 후보를 세우려 하지만 사람 찾기가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국민중심당은 경기도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고…. 하지만 좀 더 냉정히 얘기하자면 5·31 경기도지사 선거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진대제와 김문수간의 빅 매치이다.

 출발은 진 후보가 먼저했지만, 각종 여론조사 지표는 김 후보가 앞서 있다. 진 후보는 정당지지도 만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해 고민이 많다. 김 후보는 현재의 판세를 유지하려 진을 뺄게 틀림없다. 이런 살얼음판을 한달 넘게 디뎌야 하니 그 스트레스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진 후보는 지지도 격차를 뒤짚고 반드시 승리한다고 장담한다. 스스로 선택한 도전에서 한번도 실패한 기억이 없는 자기확신이 그를 지탱하는 동력이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로서 일본에 거둔 '반도체 대첩(大捷)'은 신화에 가깝다. 정보통신부 장관 재임 3년동안 대한민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정착시켰고 디지털 전송방식을 둘러싼 갈등을 소리소문없이 정리하는 수완을 보였다. 승승장구의 추억 뿐이다. 그를 지방선거에 세우려 열린우리당이 사정하고 대통령이 특별히 당부한 것도 그의 성공 신화에 매료됐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스타마케팅 전략이 아니고서는 수도권 표심을 일구기 힘든 여권의 절박한 사정이 더 큰 이유이지만.

 김 후보는 강한 자부심으로 뭉쳐 있다. 자신은 진 후보 보다 경기도의 미래를 훨씬 더 깊게, 오래 고민해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경기도는 한, 두달 공부한다 해서 알 수 있는 고장이 아니라고도 한다. 또 민심을 얻는 일과 기업을 경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의 자부심은 신산한 인생역정에서 발원한다. 대학시절엔 대표적인 운동권으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부인도 현장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났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의 인생에 꽃이 핀 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되면서다. 하지만 그는 한나라당의 웰빙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경선도 소장파 연대를 통해 돌파했을 만큼 당 주류와는 정서적 일체감이 적다.

 정치권 안팎에서 여야 후보가 바뀐 것 아니냐는 호사가들의 입방정이 도는 것도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이와 같아서다. 강남 집값 잡기에 여념이 없는 열린우리당이 타워팰리스 두 채를 소유한 CEO 진 후보를 내세우고, 한나라당이 주류 네트워크에서 벗어난 김 후보를 선출해서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승리'를 위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선택이 빚어낸 우연한 결과일 뿐이다.

 두 후보는 경북중학교 동기동창이다. 서울대 입학동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엔 둘 중 하나로 승부를 내야 하는 꼭짓점에서 만났다. 인물로만 본다면 유권자들이 우열을 가려 한표를 행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출중한 인사들이다.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는 역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온 사람들이다. 진 후보가 재산이 많은 것도, 김 후보가 어려운 여건에서 경선을 통과한 것도 모두 자기 운명을 지배한 결과로 봐야 한다.

 진대제, 김문수 두 사람의 정정당당한 승부를 기대한다. 변칙과 반칙이 없었던 인생을 그대로 내보이고 정책과 비전으로 유권자를 설득하기 바란다.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면 된다. “민중(유권자)이 두 사람의 연설(정책과 비전)을 들었을 때 더 못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마키아벨리의 믿음은 '현명한 대중'을 향한 찬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승부의 그날 이후 두 사람이 예전 보다 한결 애틋한 우정을 나누며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인물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윤 인 수(정치3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