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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적산에서 본 산줄기: 인천 원적산은 천마산, 중구봉, 계양산으로 이어진다.
한남정맥은 서북부지역 '수도권 핵심 녹지축'이다. 하지만 그 주변에 사는 이들조차 그 명칭을 잘 알지 못한다. 경인일보는 인천녹색연합과 함께 지난 해 '한남정맥 시민탐사'를 기획했다. 우선 한남정맥의 존재를 널리 알린 다음, 그 가치와 보존 문제를 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해 5월부터 시작된 탐사는 2주에 한 번씩 진행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여름철과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탐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녹색연합은 탐사시작 1주일 전 홈페이지에 탐사단 참가 모집 공고를 올렸다. 간단한 등산장비와 도시락, 회비 1만원을 준비하면 탐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취재기자를 제외하고 탐사 참가 인원수는 70명이었다. 초·중·고등학생, 회사원, 산악인, 화가, 대학교수, 초등교사 등 다양한 이들이 함께 발걸음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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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사단은 비슷해 보이는 나무와 꽃이름을 구별하는 방법부터 익혔다. 인천대학교 물리학과 장영록 교수, 녹색연합 생태도시부 신정은 간사가 이를 도왔다. 해발 600이하의 낮은 산줄기로 이뤄진 한남정맥은 한국전쟁 후 연료림(땔감) 사용으로 산림황폐화가 심했다.

저지대에는 아카시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밤나무 등이 식재돼 있었다. 중턱을 넘어서면 눈여겨 볼만한 나무숲이 많았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떡갈나무 출현빈도가 높았다. 팥배나무도 숲을 이루고 있었다. 경기도 김포 문수산과 안성 칠장산에서는 서어나무 군락과 마주쳤다. 서어나무 식생의 변화과정에서 최종 단계인 극상림을 이루는 나무다. 서어나무 군락의 존재는 안정된 식물계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인천 천마산에는 쪽동백나무 군락도 있었다. 도심과 인접한 낮은 산등성이를 감안할 때 특이한 경우였다. 안성 칠장산에서는 충청 이남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대팻집나무의 자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탐사에서 식생조사를 맡은 민속생물연구소 송홍선(47) 박사는 "한남정맥은 온난화와 수목북한계지 관계 연구의 최적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탐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한결같이 "한남정맥이란게 우리 동네에 뻗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경인일보는 탐사에 참가한 시민들과 활동가들로부터 '참가 소감문'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중 8명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한남정맥 탐사 소감문

■ 이성호(32·회사원)씨
그저 산을 오르내리는, 단순한 산행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탐사를 하면서 알지 못했던 식물 이름을 하나씩 배웠습니다. 또 우리가 '개발'을 내세워 산을 훼손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는 동네(인천) 산을 수없이 오르내렸어도 쉽게 알 수 없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이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인천녹색연합은 올해도 한남정맥 탐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탐사에도 동참할 생각입니다.

■ 이장연(32·대학원생)씨
숲과 산, 논과 밭을 밀어내고, 회색빛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들어섰습니다. '개발', '발전', '성장' 등의 이름으로 변질된 우리 고장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죄스럽기도 했습니다. 지켜내기는커녕 방관하던 자신을 꾸짖었습니다. 그 반성과 성찰은 나뭇잎 사이에서 빛나는 눈부신 햇살과 같았습니다. 한남정맥 탐사는 제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줬습니다. 앞으로 '탐욕의 도로'가 아닌 '살아숨쉬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의지도 생겼습니다.

■ 김수진(27·여·초등학교 교사)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보는 산이지만, 이게 한남정맥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탐사를 통해 처음 한남정맥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또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녹지축의 개념과 중요성, 구체적으로는 한남정맥 녹지축의 가치와 현실태에 대해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한남정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서기(58·문학산지킴이)씨
저는 인천 '문학산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남정맥 탐사에 참가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백두대간에서 정맥이 갈라진다는 것과 한남정맥의 존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산을 좋아했지만, 입체적으로 관심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나름대로 깨달은 게 많습니다. 광교산에 오르던 날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 한기를 느끼며 벌벌 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알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 장정구(35·전 인천녹색연합 국장)씨
한남정맥은 수도권 서남부지역을 지나는 단순한 산줄기가 아니었습니다. 야생동식물의 터전이고 그 지역주민들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현장이었습니다. 한남정맥은 백두대간이나 다른 정맥들보다 훨씬 많은 곳이 파헤쳐지고 잘렸습니다. 생태축으로서의 의미를 차츰 잃어가고 있습니다. 탐사내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나마 탐사가 1박2일로 진행되면서 묵은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동네할아버지와 이장님으로부터 듣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우리를 푸근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우리생활 속에 산줄기와 물줄기의 의미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신정은(30·여·인천녹색연합 간사)씨
지난 한 해 시민들과 함께 문수산에서 시작하는 한남정맥을 두 발로 걸어보았습니다. 도심을 벗어나 3개 정맥의 분기점인 칠장산에 가까워질수록 산세는 깊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번 탐사는 단순한 종주 산행이 아니었습니다. 각 지역의 사람을 만나 환경현안을 살피는 과정이 포함돼 있어 뜻깊은 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한남정맥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남정맥을 알고, 이해하고, 더 이상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 노현기(45·여·굴포천살리기시민모임)씨
"당신들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줄 것입니까?" 언젠가 어른들을 교육할 때 던진 질문입니다. 좋은 학벌과 재산, 모두 좋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비싼 과외학원에 보내는 것도 결국은 어린 아이가 어른이 돼 잘살게 하기 위해섭니다. 이렇게 귀한 자녀들에게 좋은 산과 하천을 물려주면 좋을 것입니다. 아니, 더는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연은 우리가 후손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훗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책임질 환경을 물려주는 일이,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 심유정(40·여·주부)씨
아들 병관이와 함께 가현산에 오르던 날이 떠오릅니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한남정맥을 밟아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습니다. 하지만 검단신도시 주변 한남정맥 마루금(산등성이)을 걸을 때는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데군데 산허리가 잘렸고, 그 자리를 '아파트숲'이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탐사단은 마루금 흔적을 찾아 '도심속 산행'을 이어나가야만 했습니다. 아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10년 뒤, 친구들과 한남정맥을 찾았을 때 적어도 오늘 모습은 지킬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