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민주당후보>

21세기 세계 각국은 유비쿼터스(Ubiquitous)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IT환경을 뜻하는 유비쿼터스가 정보화 시대에 핵심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박정일 경기도지사 후보의 홈페이지(www.ubipark.net)는 유비쿼터스의 약자인 유비로 시작한다. 그만큼 유비쿼터스에 목을 매달고 있는 그가 정치권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을 차세대 IT와 유비쿼터스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1962년 안양시 비산동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가정환경 조사서에서 'TV 보유' 항목에 동그라미를 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노벨상을 꿈꾸는 엔지니어였다. 당연히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고, 정치인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31살(1993년)의 젊은 나이로 삼성SDS 일본 도쿄 사무소장을 맡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일본 도시바 전자회사와 '교환사원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쿄 사무소장을 맡으면서 2년간 도시바에 근무할 수 있었다.
도시바에서의 근무 경험은 그에게 글로벌한 시각을 갖도록 했다. 노동자들의 장인 정신과 이를 인정하는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배려에서 그는 일본이 앞서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그들의 체계적인 업무 처리 방식과 하이테크놀로지에 대한 그들의 진취적 자세에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몇날 며칠을 지새우며 무려 10권이나 되는 '삼성SDS 도쿄 백서'를 작성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텍스트 중심의 문서가 사라지고, 형식보다는 내용 자체를 중시하는 경영 기법이 일반화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생소한 경영 기법을 그는 일본지사부터 실시해 커다란 성과를 거둬냈다.
“당시만해도 IT기업은 이름만 IT기업이었지 경영 방식은 제조업이랑 다를 게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바쁜 일상을 쪼개어 일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이 근 반세기도 안돼서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한 요인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아시아태평양 연구과정을 밟은 것이나 일본경제연구회장을 10여년 동안 맡았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불혹이 되던 해에 또 한 번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 모두들 들어가고 싶어하는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에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고,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정보화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서 IT강국으로 떠오르기 위해선 영어와 미국의 경영 기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년간의 공부를 마친 그는 2004년 귀국해 정치권에 뛰어들겠다고 다짐한다. 한 사람의 엔지니어보다는 한 명의 정치인이 가진 파워를 그는 미국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든 2004년 17대 총선에선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그는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IT전문가로서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고자 하루하루를 도전의 날로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