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논설위원)
시화연풍(時和年豊). 이명박 대통령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각국 사절단과 국내 1만5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치러진 취임식에서도 이를 주제어로 붙였다. 시대어로 국정지표임을 국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특히 실용과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수행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데서, 국민성어로 까지 확대 재생산되면서 믿음과 현실정치의 대명사처럼 된 것도 사실이다. 각료 인사문제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그래서 믿음 못지 않게 큰 실망을 준 것이기도 하다.

사실 시화연풍은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와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경외시 할 만큼 새삼스럽지도 않다는데 주지할 필요가 있다. 국민을 위해 늘 강조돼야 하면서도 가장 평범하다 보니 잊고 산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국민화합을 뜻하는 시화(時和)와 경제성장을 담고 있는 연풍(年豊)의 조합어로 이 시대에만 통하는 시대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위정자들의 초심에는 담겨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단어조차 생소해 하는, 실천과는 거리가 먼 위선행위가 횡행하면서 생겨나는 엄청난 괴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해도 될 성 싶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시화연풍은 시화세풍(時和歲豊)과 함께 수시로 등장한다. 당시 백성들은 이를 기원했고, 정치가들도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의 안위가 가장 큰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정사(正史)중 백미는 단연 정조에 얽힌 이야기다. 정조는 재위 7년(1783) 경기도에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3일 동안 감선(減膳: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몸소 근신하는 뜻으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던 일)하면서 "오호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데,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나의 한결같은 걱정은 오직 백성들의 먹을 것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가난한 백성의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며, 경제가 해결돼야 다른 것도 돌보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걸음 더 나가면 감선에서, 통치이념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도덕성과 신의를 살필 수 있다.

도덕성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정도를 추구한 제갈공명은 "천하를 얻더라도 도덕성과 신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다. 각료 인선에서 실용을 강조하다 보니 도덕적인 측면을 다소 소홀히 한 부분이 있다는 이 정부의 변명은 자칫 국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해도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는 데서 극히 비현실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현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지난 정부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단정지을 수 있었던 것은 측근의 도덕성과 대통령의 신의가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고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현 정부도 이대로라면 이러한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성장도 국민화합도, 이의 실천정신인 실용도 도덕성과 신의의 바탕위에서만 빛을 발한다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서민경제 활성화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취임후 7일만이다. 그것도 3명의 각료 내정자가 부동산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하고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야당의 반발로 임명장을 받지 못하면서 '성원'이 미달돼 직전 참여정부 각료 4명이 참석하는 '기형적' 형태로 진행됐다. 이같은 현상을 빚은 원인이 현 정권의 도덕성 결여든 야당의 발목잡기든 지금으로서는 중요치 않다고 본다. 환부가 있으면 도려내야 새 살이 돋듯이,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화합의 길로 인도하고 선진화를 이루려면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데서 도려내야 할 환부, 즉 결여된 도덕성을 빨리 회복해야 하고, 되풀이 되는 일을 차단하는 것이 현명한 자의 행동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잃어버린 정부가 또 다시 나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것도 덧붙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