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부터 미루고 미루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엊그제 간신히 지역구 공천을 끝냈다. 현재 국회제1당이라는 통합민주당은 이 보다 더 늦어 이제 비로소 마무리단계다. 그 밖에 여타 정당들은 아직 윤곽도 잡지못해 과연 언제나 모두 끝날지 아직은 부지하세월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늦어진 걸까. 우선은 지난 대통령선거 영향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장장 10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한나라당은 기쁨에 들뜨다 적정시기를 놓쳐버렸고, 반면 민주당은 참패의 충격을 벗어나는데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정도 이유 뿐이었을까.
정치권력을 위해서라만 '섶을 지고 불길에라도 뛰어드는' 이들이 지금까지의 우리네 정치인들이었다. 그만한 이유만으로 시기를 놓쳤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 보단 여야 모두 계파간 나눠먹기, 지분다툼, 그리고 이른바 개혁공천에 대한 기득권 세력 저항 등이 얽히고 설켜 이리 저리 눈치보다 미뤄진 게 아닐까 싶다.
한나라당만 해도 친이명박, 친박근혜 양대 계파의 밥그릇 다툼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기보다 이 계파 저 계파가 제사람 살리고 심는데만 정신이 팔리다 보니 엉뚱한 이들이 대거 간택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 덕에 경기 인천지역의 경우는 기존의 지역 정치인들이 대거 희생양이 됐다는 혹평까지 들었다. 게다가 공천개혁을 한다면서 소위 철새들까지 끼워넣었다며 이곳 저곳서 반발이 극심하다. 공천 재심사 촉구에 무소속 출마 위협을 하는 이들도 한 둘이 아니다. 한마디로 내홍의 도가니다.
민주당은 또 그들대로 그 어느 때보다 개혁공천을 부르짖었지만, 그 역시 순조롭진 못한 것 같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저승사자 공천에 겉으론 갈채를 보내면서도, 내심으론 꽤나 마뜩찮아 하며 은근히 세를 과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텃밭 호남지역 공천이 이리 저리 미뤄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오죽하면 아예 여론조사에 떠맡겨버린 곳도 많다. 간신히 공천을 마친 곳도 "어떤 배경에서 어떤 경위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탈락자들 불평이 거세고, 은근히 무소속 출마를 거론하며 위협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어찌됐든 두 당 모두 공천을 질질 끌어온데는, 심사숙고라는 면 보다는 정략적 계산에만 빠져 정작 유권자 생각은 뒷전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도대체 유권자가 이리 저리 따져보고 최적임자를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처럼 촉박하게 할 수 있었겠나 해서다.
공천이 늦어지면서 몇가지 특징은 나왔다. 무엇보다 갖가지 문제를 안고 뒤늦게 부산을 떨다 보니 정책개발은 아예 물건너 가버린 것 같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으리라. 민주당의 경우 오로지 견제의석만 호소하며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민생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막연한 구호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 역시 안정의석만 강조할 뿐, 그 어떤 정책도 새롭게 제시 못하고 있다. 인물대결 또한 실종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사 부랴부랴 후보들을 선보이는 판이니, 유권자들이 깊이 따져 가려낼 시간 여유가 거의 없다.
결국 정책이야 있건 없건, 인물이야 누가됐든 당이나 보고 알아서 뽑으라는 배짱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국회의원은 선출해야 하니 "유권자도 찍지않고 배길 수 있겠냐" 하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이쯤되면 선거 자체는 물론 유권자 모두에 대한 모독이 될듯 싶은데, 정녕 그런 이들에게 나라 일을 맡겨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박 건 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