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대량학살의 희생자와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 모두 앞에 고개를 숙인다." 며칠 전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예루살렘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가 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 사죄하며 한 말이다. 이스라엘 국회의원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해진 이 연설에서 메르켈 총리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기도 했다. "독일은 600만명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의 도덕적 파멸에 책임을 져야만 미래로 나갈 수 있다"고.

2차대전 때의 만행에 대해 독일이 사죄한 건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970년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 옛 유태인 게토 전몰자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 뒤 1994년에도 당시 독일 대통령 로만 헤어초크가 '독일인들이 폴란드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죄했고, 2000년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 역시 이스라엘을 방문, 과거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이처럼 독일은 틈만나면 깊이 사죄해왔다. 늘 하는 말이지만 지난날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면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그들은 태평양 전쟁 때 우리국민을 강제로 징용 징병 군위안부로 끌어가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사죄는커녕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등 망언 망동을 일삼아왔다. "죄는 용서하되 잊지만 말자"면서 우리는 그토록 관용을 베풀어왔는데도…. 오죽하면 미국 네덜란드의회까지 나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까.

메르켈 총리가 사죄할 때 이스라엘 일부 의원들은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연설이 진행되는 건 치욕"이라며 불참했다 한다. 만일 일본총리가 우리 의회에서 비슷한 연설을 한다면 우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