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미국 'TV방송인의 공익책임에 관한 자문위원회'는 선거 직전 30일간은 프로그램 중간에 최소 5분간 후보자들이 어떤 정책을 생각하고 있는지 직접 본인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방송사에 권고했다.

하지만 2000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5-30 기준'에 자발적으로 협조한 미국의 TV방송사는 1천300개 중 7%에 불과했다고 한다. 영상미디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면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적어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8대 총선이 시작됐지만 유권자의 관심은 싸늘하다. 주요 정당의 늑장공천과 그 후유증으로 유권자에게 지역 출마자들의 신상정보는 물론 정책과 공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지역마다 후보들의 득표전략에 따라 후보자 토론회와 합동연설회가 무산되거나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권자 대다수가 선거공보를 통해 후보자 얼굴을 마주해야 할 판이니 유령선거에 가깝다.

소위 '박근혜 마케팅'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사이의 공방도 유권자가 안중에 없는 한국 선거풍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개인과의 친소를 중심으로 어제의 동지가 서로 배반자로 칭하며 정책선거를 와해시키고 있으니 그렇다.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1865년 웨스트민스터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출마를 권유받고 유권자를 향해 "당선된다 해도 내 시간과 정열을 선거구를 위해 바칠 수 없다. 의원은 선거구에서 선출되지만 전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하지만 2008년 한국 총선에서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간단한 상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21세기 한국 선거가 19세기 영국 선거만 못한 셈이니 허무하다. 정말 이러다가 유권자 없는 유령선거가 뿌리내릴까 두렵다.

윤인수(경인플러스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