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배 (인하대 법대학장·객원논설위원)
오늘 밤, 299명의 국회의원이 새롭게 탄생한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수백명의 낙선자들이 눈물을 훔칠 것이다. 그들은 다시 4년 뒤를 기약하며 절치부심할 것인지, 아니면 의정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피를 토하며 내세웠던 수많은 공약과 열정들이 우리사회의 어디에선가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대부분의 낙선자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것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낙선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던가. 세상사의 쌀쌀한 인심과 권력의 무상함을 가장 먼저 실감하는 사람은 낙선자의 배우자다. 승부의 세계, 특히 치열한 선거일수록 아내들이 겪고 감내해야 하는 헛소문과 시련은 말로 옮길 수 없다고들 한다. 오죽했으면 떨어진 후보자는 동네 슈퍼에도 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까. 당선여부와 관계없이 많은 후보자의 아내들이 이런 저런 병을 얻거나 일찍 사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은 지난 일요일. 인천의 배구경기장을 찾았다. 한때 인하대 배구부 단장의 직책을 맡았던 인연 때문이다. 그러나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은 패배했다. 지난 3년간 겨울 배구판의 돌풍과 프로배구의 가능성을 키워낸 문용관 감독의 영광이 날아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수도 관중도 모두 퇴장한 스탠드에 아들과 함께 우두커니 앉아 있는 문 감독의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독백처럼 말했다. "그냥 남들처럼 밥 세 끼 편하게 먹는 자리였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그는 더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구단에도 선수에게도 그리고 남편에게도. 프로감독의 배우자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마다 승패에 시달리는 남편을 봐야 하는 아내의 고통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사실 그에게 감독직 제의가 왔을 때 KAL이 어려운 상황임을 알면서도 나는 반대의견을 냈다. 인하대 감독으로 있으면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꿈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의 인성과 품성에 비춰볼 때 프로의 세계에서 입게 될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자기희생이 필요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와 가끔 만나는 날이면 관전평을 하거나 2014년 아시안게임의 배구경기장 걱정을 함께 한다. 그때마다 그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승패의 잣대로 배구를 보지 않는 시각 때문일 것이다. 결론은 모든 기대와 분노 역시 결국 감독의 몫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끝을 내기 일쑤다. 그러나 그가 팀과 선수들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직도 좋은 인성과 성품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경쟁의 이름으로 원칙과 도덕도 없이 승패를 부추기고, 승자의 독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프로의 세계가 그에게는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마음과 행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오히려 푸근하다. 패배한 그가 경기장 밖의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팬들이 보낸 박수도 그의 그런 품성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것이 배구코트에서 그리고 체육계에서 활동할 능력과 자질을 갖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에 내가 동의하는 이유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경쟁을 앞세운 채 패자의 가능성을 헤아리기보다 또 다른 강자를 요구한다. 그도 당분간 선거판에서 패배한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시련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둔 승리자보다 원칙과 윤리를 지키면서 패배를 받아들이는 후보와 리더들이 우리사회의 새로운 힘이자 희망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래서 패배한 후보자와 문용관 감독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김민배(인하대 법대 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