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충원 (강남대교수·도시 및 부동산학)
"도시는 사회적 산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회체제질서 내에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기능한다는 의미의 말이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도시가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는 절대 권력자 혹은 사회체제라는 틀 안에서 통제되고 관리된다. 절대군주시대에는 개별 건축물의 높이와 형태까지도 엄격하게 통제되기도 했다. 토지소유권이 절대 권력자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전통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 전통의 왕조와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절대군주의 시대는 끝나가고 새로운 질서가 이를 대체해 갔다. 산업혁명에 따른 생산방식의 변화는 급격한 도시화를 가져왔고, 민권(民權)운동은 토지사유권의 확대라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의 힘이 세어지고, 자신들의 토지를 이용하는 데에 대한 통제와 관리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세기부터는 자유방임주의 사상(레세페;laissez faire)이 확산되면서 토지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시장(市場)에서 토지는 장래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에서 이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비용을 발생시키는 불건전한 방향으로 토지자원을 소비하기도 한다. 시장에서의 무제한적인 경쟁은 종종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기도 한다. 개발업자(developer)들은 사회서비스와 공공의 효용성을 무시한 채 개인적 수익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은 이렇듯 시장에서의 자유방임적 토지소유와 이용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제도이다. 그것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토지소유권 및 이용권의 통제와 토지에 대한 계획적 관리에 있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도시계획이 아주 견고한 사회시스템으로 발전했고, 이후 도시계획은 전통적인 정부 기능의 하나로서 전형적인 규제정책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1980년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물결은 규제위주 도시계획의 한계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규제위주의 도시계획은 시장의 흐름을 왜곡시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규제에 따른 관리와 통제비용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계획집행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은 효과적으로 도시를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기능을 복원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탈규제와 민간화라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따라 종전의 시장대립적인 도시계획에서 시장과 민간의 활력을 강조하는 시장친화적인 도시계획으로 개념을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규제행위를 철폐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필요한 규제는 단순화시키고 불가피한 규제에 대해서는 민간부문과의 타협을 통한 합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유 시장 메커니즘과 도시계획과정은 더 이상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으로 적응하고 교정되어 가는 두 개의 바퀴와도 같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도시계획은 공공부문의 이익과 민간부문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해서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시장을 지원하고,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도시계획안의 대부분은 민간의 협조를 얻어야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점점 더 민간부문에 의존하거나 민간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도심재개발은 공공투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민간부문의 참여와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주거지 개발, 상업지 개발, 산업단지 개발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서는 도시개발이 자유 시장 메커니즘의 기법을 따르는 경향이 늘어가는 추세이고, 민간부문과의 공동개발(joint development)이 주요한 개발방식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여러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종전 규제위주의 시장대립적 도시계획은 시장친화형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서충원(강남대 교수/도시 및 부동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