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문 (인하대교수·영화평론가)
무력한 엑스트라처럼 보이는 대중들이 속마음을 드러내면 각본 없는 드라마가 등장한다. 선거는 어느 정교한 연출가라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결과를 만드는 무대다. 지난해 연말의 대통령 선거 때도 그랬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반전의 충격을 연출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넉 달 남짓한 시간을 두고 치러진 일이어서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한사람씩 붙잡고 물어봐야 분명한 대답을 듣기도 어려운 일이고, 대답을 듣는다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모두 대신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럴듯한 추측과 예측만이 넘칠 뿐이었다.

대통령선거에서는 현재의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지지했다. 여러 후보가 경쟁했지만 저마다 감추기 어려운 약점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아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고,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큰 차이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마무리 지었다. 재임기간 동안 국정을 책임졌던 전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불만과 노여움을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지지로 바꾼 것이다.

뒤이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더욱 절묘하다. 그동안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 경우나 함량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인물들, 현실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기보다는 이념적 선동에 기운 인물들이라면 대부분 민심의 외면을 받았다. 새로운 정권의 실세 권력자로 불리는 인물들까지 대거 질타를 받은 점은 더욱 눈에 띈다. 성실하게 해야할 일을 준비하는 대신 정파적 이해관계를 내세워 권력다툼에 더 골몰한다는 인상을 주는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선거와는 달리 지역구마다 후보도 다르고, 유권자의 판단과 결정도 다르다. 그런데도 결과는 더 이상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모양으로 나타났다. 한쪽에 힘을 실어주되 넘치지 않도록 하고, 또 다른 한 쪽에는 야단을 치되 아주 쓰러지지는 않을 정도로 여지를 남겨 주었다. 억울하게 쫓겨났다고 보이는 후보들에게는 다시한번 일해보라는듯 기회를 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역대 최고 표 차이로 지지를 받았다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열광도 별다른 후광 역할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사전에 기획을 하고, 실행을 하려고 해도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결과를 유권자들은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바른 길을 가지 않고, 민심을 거스르는 일을 하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단호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묻어있다.

한때 파죽지세로 열풍을 일으키던 한국영화의 위상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세계최고의 규모와 품질을 자랑한다는 미국영화조차 눈치를 보며 개봉일정을 조정해야 할 정도로 기운차던 때에 비하면 최근의 한국영화 처지는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들 처지나 다름없을 정도다. 관객들의 말없는 비난이 관객의 감소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동안의 호황에 안주하며, 관객을 만만하게 여기는 영화인들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응징이다.

대중들이 투표장으로 가면 유권자가 되고, 영화관으로 가면 관객이 된다. 그들이 국민이며 민심이다. 민심은 정치든 영화든 기업이든 어느 분야 가릴 것 없이 아무리 화려한 언변과 행동으로 포장을 하더라도 그것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발휘한다. 그 힘은 어둠 속에서도 목표물을 찾아낼 수 있는 적외선 투시경보다 더 분명하며 단호하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 겸손한 성실함만이 민심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