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전 외국여행은 1976년 후쿠이시를 다녀 온 것이 처음이었다. 그 당시 나는 방송국 기자이면서 수원 청년회의소(JC) 회원으로 봉사활동을 할 때다. 후쿠이시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44년전인 64년에 후쿠이 JC와 수원 JC가 첫 자매결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83년에는 수원 상공회의소와 후쿠이시가 자매결연을 맺었고, 2001년에는 수원시와 후쿠이시가 우호도시 결연을 맺어 JC·상공회의소·수원시와는 큰집 작은집처럼 서로 왕래하며 친근감 있는 도시이다. 규모는 우리보다 작지만 시내 한복판에 현청(도청) 주변이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그마한 성곽 도시라는 것에서 우리시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지역 특성으로는 1945년의 후쿠이 대지진으로 시내가 거의 파괴 되었으나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가 빨리되어 '불사조의 도시'로 알려지고 있으며 시내 중심을 흐르는 아스와강의 제방 위 강변에는 일본에서 가장 긴 벚나무길이 있어 봄에는 벚꽃구경을 하러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을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 봄 축제는 4월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계속되는데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개막식이 시작되는 12일 후쿠이의 옛 이름인 에치젠(越前)시대 행렬이다. 이 행렬은 400여명의 음악 퍼레이드와 700여명의 군무장을 한 무사행렬이다. 1천100여명이 시내 서쪽을 출발, 2시간 반 동안 시내 중심가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수원 화성문화제 때 1천800여명이 동원되는 능행차를 연상케 했다. 모든 행렬이 끝난 강변 벌판에 많은 시민이 몰려 먹거리판이 벌어지는 이날 벚꽃축제는 정말 장관이었다.
한 가지 눈여겨 본 것은 축제 전날 전야제 행사로 아스와(足羽) 신사에서 열린 일본 전통 기모노 의상 패션쇼에서 본 일본 왕실과 귀족들이 입었던 기모노쇼였다. 12가지 색으로 된 의상을 하나하나 짜임새 있게 입히고, 고리 한 가닥만 풀면 다 벗겨지는 의상쇼를 보고 일본 기모노 의상의 진수를 보기도 했다.
방문 3일째 되는 날 향토 역사 박물관에 도착해 1945년 태평양전쟁 때 원폭의 피해장면과 복구장면을 상세하게 기록전시한 것을 보면서 얼마 있으면 개관되는 우리시 역사박물관과 화성박물관의 고증자료가 어떻게 진열될지 한걱정이 되기도 했다. 모든 역사 흔적을 하나하나 기록 보존한 것을 보고 기록문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기도 했다.
이번 방문중 시청과 현청청사 옆에 있는 한 호텔에서 3일동안 지내면서 새벽6시 호텔옆에 있는 중앙공원과 현청 성 주변 산책로를 혼자 거닐며 공원안에 설치된 2개의 동상과 1개의 흉상을 눈여겨봤다.
막부 말 후쿠이 무사출신으로서 영주제도 폐지후 현(縣) 제도하에서 초대 동경부지사를 지낸 유리 고세이(由利 公正)이의 흉상이 있었으며, 도쿄미술학교 설립에 전력을 쏟으며 일본미술의 진흥을 위해 활약한 오카구라 덴싱(岡倉 天心)과 후쿠이 출신 처음으로 총리대신이 된 오카다 게스케(岡田 啓介)의 동상이 있었다. 모두 후쿠이 출신으로서 그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크게 기여한 공적을 동상에 담아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우리 수원 만석공원에는 도청과 삼성전자를 유치한 이병희 선생의 동상이 있지만 우리 수원도 지역 발전에 큰 공헌과 업적이 있는 분은 어느 공원이든 그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나 흉상을 세워 수원 역사의 흔적으로 후세에 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