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일까? 아니면 이제 투자 적지로서 중국의 시대는 끝났는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중소기업 사이에서 달라진 중국의 기업환경이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값싼 노동력과 세제혜택을 겨냥해 중국에 진출했다가 무단철수한 기업들의 근황이 '야반도주'라는 용어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중국 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의 변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앞으로 중국 내에서 각종 규제는 한층 강화되고 외자기업에 대한 혜택은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와 맞물려 중국에 진출해 살아남은 기업들도 또 다른 생존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인천상공회의소 중국진출 인천기업 경영환경조사단과 함께 중국 칭다오시를 찾았을 때 현지에서 만난 3명의 인천 남동공단 출신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악화된 기업환경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현지적응과 변화'를 전제로 '아직도 기회는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칭다오에서 이른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비교적 견실하게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들 60세 전후의 CEO들에게 '기회의 여지가 남아있는 중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물었다.


■ 중국경제인연합회 '기업 정보교류 2006년 출범 남동공단 60여개 업체 참여'

중국경제인연합회(회장·김태욱·태경전자 대표)는 중국 칭다오에 진출한 인천기업들간의 정보교류를 목적으로 결성됐다. 남동공단에서 칭다오에 진출한 6개 기업 대표들이 모임을 가져오다 지난 2006년 6월 공식 출범했으며 남동공단 소속 40여개 업체 포함 총 60여개 업체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갖고 KOTRA 등 유관기관 관계자를 초청, 새로 바뀌는 중국의 제도나 법 등에 대해 강의를 듣는 한편 서로 위기극복 사례도 발표한다. 또 칭다오시 청양구 인민정부에 파견나온 인천 남동구청 직원이 참석해 이들의 애로사항을 접수, 남동구청과 인민정부와 연계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정책변경 시 충분한 유예기간을 둬 외자기업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 중국정부에 대한 회원들의 가장 큰 요구사항"이라며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 정부 대 정부차원에서 중국진출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칭다오 진출 인천기업 경영환경 조사를 위해 연합회를 방문한 인천상공회의소 조세열 차장은 "인천상의 차원에서도 중국진출 인천기업의 애로해소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김태욱 청도태경전자유한공사 대표

중국정부는 적극적인 투자유치에서 선별적 방식으로 외자유치방식을 전환했다. 특히 신노동법, 신기업소득세법 시행 등으로 이제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환경오염성 산업의 업종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남동공단 기업을 중심으로 칭다오에 진출한 인천기업들의 모임인 '중국경영자협의회' 회장인 김태욱 태경전자 대표는 이들 업종의 기업을 '한계기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특히 "칭다오의 경우, 대기업 진출과 맞물려 대기업 협력업체들이 포진해 있는 톈진이나 선전, 퉁관 등과 달리 독자적으로 진출한 중소영세기업들이 많아 더욱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많은 기업이 떠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한국 기업인들이 겪고 있는 경영상의 애로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동안 차등 적용하던 5대 보험(양로·의료·공무·실업·생육보험) 가입이 전면 의무화되고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가 올해에만 40% 올랐으며, 외자기업에 대한 기업소득세도 지난해 12%에서 올해 25%로 2배 이상 상승했다. 증치세의 환급률도 크게 낮아졌다. 여기에다 근로자와 계약(합동)을 체결할 때 2회째부터는 평생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업 청산절차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워 마음대로 기업을 접을 수도 없는 판이다. 카오디오 부품 생산업체로 직원 160명에 연간 1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견실한 업체지만 태경전자 역시 달러화 약세라는 돌출변수로 인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었다.

이처럼 수시로 변하는 중국의 기업환경과 관련해 김 대표는 '철저한 현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대표는 "하루빨리 중국 근로자들이 기술을 습득토록 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원자재를 현지조달하면서 내수시장을 뚫어야 하며 CEO들의 문화적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업인들이 기술을 빼앗길까봐 기술이전을 주저하는데 어차피 100% 기술이전은 불가능한 만큼, 마인드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부연설명이다.

■ 이석재 대신메라판 대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모두 낙오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야반도주'란 표현을 써가며 한국에서 더 위기감을 조성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중국에서 기업을 하다 보니 잘 안 돼서 나가는 것이에요."

이석재 대신메라판 대표는 한국기업의 무단철수를 다룬 국내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입을 열었다.

실제로 이 업체는 전략적으로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하고 중국에 진출했기에 단순히 인건비를 노리고 중국에 진출한 임가공 업체들과는 사정이 다른 듯했다. 이 업체는 공항 검색대 벽면과 식탁, 책상, 문짝 등에 사용되는 열합성수지인 메라판을 생산하고 있다. 45개의 대리점과 5천여개 취급점을 표시하는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 있는 벽면 지도에서는 중국 현지에 뿌리내린 이 업체의 행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회사의 전체 근로자는 50여명. 생산설비를 반자동화했기 때문에 생산직 직원은 절반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한국기업 무단철수의 1차적인 원인을 중국의 각종 조치에 대한 CEO들의 대응능력 부재에서 찾았다.

"예전에는 생산형 CEO들이 주로 중국에 들어왔어요. 그러다 보니 각종 제도나 세법이 바뀌는 것에 대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중국 정부에 대해 불만만 털어놓기 일쑤였지요. 중국도 법치국가인데 법을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지금의 무단철수 사태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 대표는 "이제 중국에 진출하려는 CEO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철저히 준비를 하는 한편, 현지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관리형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송재성 동건공업 상무

동건공업 중국공장(청도동건기전제품유한회사)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공장 한편 그늘막 아래에 촘촘히 세워져 있는 100여대의 오토바이였다. 이 회사가 2002년 이곳에 둥지를 틀 때만 해도 이곳에는 오토바이의 그림자도 없었다. 대신 자전거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중국 근로자는 3명에 불과하다. 중국에 진출해 성공한 기업은 중국 현지인들의 삶을 이처럼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 업체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내수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앞의 두 회사와 달리 이 업체는 남동공단에 모기업을 두고 중국 현지 공장에서 모터와 케이스 등의 반제품을 만들어 역수출하는 기업으로 중국 내 내수기반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공장 총경리를 맡고 있는 송재성 동건공업 상무는 그래도 중국에 진출하길 잘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인건비가 중국진출 초창기보다 3배가량 올랐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이제 내수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품질로 싸울 각오입니다. 상황이 어렵지만 이를 돌파할 수 있는 틈새시장은 분명 존재하리라 믿고 있어요. 위기가 닥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6년째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는 그의 공장 숙소에 들렀을 때 방 한구석에 골프가방이 놓여 있었다. 본사 김진만 회장이 무료함을 달래라고 보내 주었다는데 한 번도 골프를 친 적이 없다고 한다.

"장치산업이라 손쉽게 움직일 수도 없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공들인 부분이 아까워서라도 못 떠난다"는 송 상무의 말에서는 비장한 각오마저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