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인천시 남구의 한 고등학교 학부모회는 작년 3월부터 4월까지 회원 60명에게 1인당 30만원을 회비로 모금했다. 회원 중 총학생회장 부모는 100만원, 1·2학년 부회장의 학부모는 각각 70만원씩을 내도록 했다. 이렇게 모금된 회비는 2천만원을 넘었다. 이 돈은 교사들과의 식사비나 야유회비로 쓰였다. 학교장은 인천시교육청에서 경고처분을 받았다.

# 장면 2: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의 구월중학교(교장·김종현)는 올해 새학기부터 학교 내 법정 단체인 학교운영위원회를 제외한 어머니회와 학부모회·체육진흥회 등 학부모 단체를 모두 해체했다. 이른바 '학부모 3단체'를 없앤 것은 '학교발전기금'을 두고 벌어질 수 있는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학교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구월중 김종현 교장은 "아무리 학교장이 학부모 단체에 돈을 걷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해도 학부모 단체가 있으면 돈 갹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좋은 뜻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학부모 단체이지만 없는 것이 오히려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 교장은 학부모 단체를 없애는 대신 매월 둘째주 수요일을 '담임교사 상담일'로 지정했다. 학부모들은 이날 공개된 교실에서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도록 했다. 지난 16일 오후 3시에 열린 올해 첫 상담일에는 학부모 70여명이 학교를 방문했다.

최근 경기도 수원시 모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학부모에게 돈을 요구했다가 전교생이 등교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발전기금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이 사건은 해당 교사의 직위해제로 마무리됐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교육전문가들은 학교발전기금을 '계륵(鷄肋)'에 비유한다.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떳떳하고 당당하지는 않지만, 열악하기 그지없는 현 교육재정 상황에서 학교발전기금은 '알토란' 같이 쓰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운영비와 별도로 학부모와 동문 등에서 갹출되는 학교발전기금은 현 교육재정에서는 가뭄에 단비"라고 했다.

시 교육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사립을 포함, 인천지역 445개 국·공립 초·중·고교에서 학교발전기금으로 모두 157억7천568만원이 걷힌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개교당 3천545만원인 셈이다. 2006년 학교발전기금 모금액은 166억5천만원이었다.

작년에 모금된 학교발전기금의 44.1%가량은 교육시설 확충에 쓰였다. 교육용기자재와 도서구입에 27.7%, 학생복지와 자치활동 지원에 20.1%, 학교체육과 학예활동 지원에 8.1% 지출됐다.

학교발전기금은 초·중등 교육법 제33조와 '학교발전기금의 조성·운용 및 회계 관리에 관한 규칙'에서 조성 방법과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발전기금의 접수는 언제든지 가능하나 학부모로부터 갹출하거나 모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기금조성의 필요성과 사용목적에 대하여 교직원과 학부모로부터 의견을 수렴, 사업목적과 기금조성방법, 수입지출 계획 등이 포함된 '학교발전기금 운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운영계획은 또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후 학교 게시판과 가정통신문, 학교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체 학부모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면서 일정액을 할당하는 행위와 갹출금의 최저액을 제시하고 사전에 납부 희망액을 조사하면 안 된다. 갹출을 직·간접으로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행위와 학생이나 학부모 대표를 통하여 발전기금납부서를 일괄 배부하는 행위, 개별적인 접촉이나 전화로 갹출을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행위, 기타 학부모들의 자발적 의사에 반하는 행위 등도 금지하고 있다. 조성된 기금은 교직원의 인건비성 경비나 간접교육비 또는 교육활동과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교직원 회식비, 수당지급 등에 사용되면 '불법찬조금'으로 간주된다.

시 교육청은 올해를 '불법찬조금 근절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불법 모금 행위가 발생하는 학교와 향응·금품을 받은 교사는 중징계할 방침이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발전기금과 불법찬조금은 투명성 여부에 따라 음지와 양지로 나뉜다"며 "일선 학교장의 보다 적극적인 근절 의지와 학부모들의 협조가 없이는 불법찬조금을 근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기고 / 이종희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회 교육자치지원부장)

 '교육 주체가 함께 일궈내는 학교발전기금'

학부모들의 자유롭고 건강한 학교 참여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불법찬조금 문제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찬조금이 늘 말썽이다.

일부 학교나 학부모들은 음성적으로 거액의 불법 찬조금을 갹출하여 각종 상견례 회식비나 학교행사 지원비, 교사 간식비나 수고비 등으로 쓰고 있다.

학부모들은 이런 행위가 불법인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학교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들로 구성된 학교내 단체들이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올바른 활동을 하는 것인지 학부모들의 의식을 바꿔줄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학교장의 의식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학교가 낡은 관행에서 변화할 수 있다. 불법찬조금과 달리 학교발전기금은 건전한 방법으로 조성돼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바자회, 폐품수집, 축제, 음악회, 사회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한 학교발전기금 조성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기금 조성방법이 비록 음성적으로 쉽게 조성되던 불법찬조금보다 수고롭고 절차가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함께 일궈내는 과정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이 교육을 고민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물가상승과 교육비 인상 등으로 경제적 고통을 받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국가가 적정 교육재정을 확보, 학교 교육 현장이 학부모의 별도 부담없이도 잘 운영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