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논설위원)
늘 그랬듯이 출근시간에 쫓겨 집을 나선다. 서두른다고 하면서도, 습관처럼 시간을 조금 넘겨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것이 예사가 됐다. 마음만 있지 출근시간을 바로 잡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1분만 앞당기면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떳떳한 출근길이 될 수 있는 데도, 한달이면 제시간을 맞추는 날이 며칠 안된다. 오늘도 하던 대로 무단횡단을 하다 정의롭다고 여기는, 오토바이를 탄 남자에게 쓴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 역시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뀐 상태에서 불법 주행을 하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항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하다고 여기는 기초질서의 한 단면이다. 이같은 행위에 대해 그 내면을 주밀히 살피면 우리의 법의식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쯤이야 하는,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생활습관이 나도 모르게 법을 경시하는 풍조의 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버린 담배꽁초는 생각해 내지 못하면서 남이 버린 꽁초가 크게 보이는 것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은연중 법을 경시하는 구석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법을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기 위한 첫째 조건은 사소하다고 여기는 것부터 지키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를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기초질서를 익히고 실천하는 것을 일상화해야 하는데, 이는 부모와 교사, 이웃 즉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기준이 된다. 길을 가다보면 가끔은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 한가운데를 뛰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도로를 건넌 아이가 힘들어 하며 짜증섞인 눈으로 쳐다보면, 험악한 눈으로 협박을 한다. 목적지까지 조금 빨리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 아이에겐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질 확률이 높다.

법경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는 법관련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법무부가 지난 25일 법의 날에 맞춰 발표한 법의식 여론조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득권층의 위법이 더 큰 문제'라는 항목에 92.7%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법보다 재산이나 권력의 위력이 더 크다'는 항목에서도 '그렇다'고 한 응답자가 91%에 달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에는 '공직자 부패·비리 척결'이 27.3%로 수위를 차지했고, '사회범죄 근절' '학교·성·가정폭력 근절' '탈세사범 처벌'이 뒤를 이었다. 조사내용과 통계치가 지난 1년전과 거의 흡사하다.

기득권층의 특권적 행태나 이들에 대한 법적용이 종이호랑이식에 불과하다는 국민적 불만을 도식화해 드러내고 있다. 또한 눈에 잘 띄는 공직자 등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기득권층과 공복이라고 일컫는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늘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한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요식행위식 여론조사로 위법과 부패·비리 등을 부각시켜 공분을 조장하는 것은 오히려 법정신을 왜곡, 법경시와 파괴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같은 내용과 통계치는 발표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찾는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법을 중시하도록 하는 장·단기 대책을 내놓는 것이 법관련기관에서 할 일인것 같다.

기초질서를 사소한 일로 간주하는 일반인과 직위를 최대한 활용해 법 위에 군림하려는 기득권층 및 공직자의 경우, 행위자체로 보면 엄청난 편차가 있겠지만 법경시의 의미로만 본다면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데서 기초질서를 어기는 것이 원죄일 수도 있다. 법의 날을 보내면서 다를 것 없는 지도층의 법의식만을 부각시켜 사회정의가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원인을 찾고 원인에 맞는 장·단기 처방전을 내리는 등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지금 이 시대에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