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1992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당선되자 대다수 미국민들은 제2의 카터정부가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사실 클린턴과 카터는 닮은 점이 많았다.

같은 남부출신으로 주지사 경력이 전부이고 민주당 내 정치적 기반이 없으며 중앙정계의 경험이 전혀 없었다. 워싱턴의 기성정치권과 언론과 으르렁댔던 카터의 임기 4년은 무능과 실정(失政)의 연속이었다. 클린턴도 카터처럼 여론을 외면한 채 아칸소주지사와 대선 때의 참모들을 내각과 백악관에 배치하고 언론 및 정치권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특히나 전 국민의 관심사인 의료보험제의 개혁과 관련, 위원장에 비전문가인 부인 힐러리를 임명해 6개월간 설쳐댄 끝에 개혁안을 마련했으나 의회에서 부결되는 망신을 당했다. 대통령이 민심을 듣는 귀를 막고 가슴을 닫으니 핵심공약인 경제 살리기와 작은 정부 추진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결과는 취임 2년 뒤인 19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1953년 이래 41년 동안 상·하원을 지배해온 민주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이러한 민심이반에 자극을 받은 클린턴은 여론을 수용, 각계 전문가들을 일부 각료와 참모로 기용하는 한편 작은 정부 작업은 앨 고어 부통령에게 맡기고 자신은 경제회생에 전념해 경제를 살리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 대한 상당수 국민과 야당의 반대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80여일 만에 흔들리고 있다. 광우병에 관한 우려와 걱정, 광우병과 관련한 괴담(怪談), 괴론(怪論), 괴설(怪說)들, 그리고 청문회 등 17대 마지막 국회를 통한 야당의 파상공세에 흔들린 것이다.

정부의 태도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지난 1년반 이상 40~50%선으로 야당을 압도해 왔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24~29%선으로 곤두박질했다.

이렇게 된 데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있다. 원인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적인 국민의 지지, 작년 대선서 350여만 표차 승리, 지난 3년간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의 대승, 국민이 10년 만에 되찾아준 보수정권이라는 느긋함이다. 한마디로 한가한 자만심과 오만함이다. 물론 앞서 인수위의 실책과 일부 장관, 청와대 수석 인사의 문제점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가세됐다.

직접적인 원인은 쇠고기 수입 결정에 따른 관계부처와 기관, 장관과 고위참모들의 자만과 무사안일(無事安逸)한 자세다. 그로 인해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키우고 나아가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갖게 했다. 이는 국민의 식생활 및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보다 확고한 검역과 안전기준을 확보했어야 했다. 또 합의 직후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전문가를 동원, 각국의 사례 등을 들어 대대적인 설명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각 정당에 대해 충분한 브리핑을 했어야 했다. 합의내용을 언론에 발표하는 것으로 그치고 지금까지 각 당과 교육계 등 각계에 대한 설명도, 브리핑도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어이가 없다.

농림수산식품부와 관계기관의 장들이 쇠고기 수입에 합의하고 이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온 지 2주가 지나도록 한가하게 유유자적해 있다가 괴담, 괴설로 여론이 술렁이고 대통령이 질타하자 뒤늦게 우왕좌왕하는 자세는 한심하기만 하다. 많은 국민이 이것이 실용정부의 실용정책인가 하고 개탄했다면 새 정부로서는 적지 않은 상처와 손실을 자초한 셈이다.

새 정부 운영과 자세의 문제점이 노출된 이상 이 대통령은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적당한 시기에 확실한 인사쇄신이다. 둘째,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무사안일한 태도를 일소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 기관의 장이 나서고 해결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 셋째, 당정간의 긴밀한 정책조정과 대야당 설득이다.

끝으로 언제나 민심, 민의, 여론에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언론인 전 고려대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