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영 (논설실장)
60~70년대 한창 잘 나가던 스테인리스 그릇 공장에서의 일이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강판 자르는 소리, 제품들 부딪치는 소리들로 공장안은 귀가 먹먹하게 시끄럽다. 그 때 한 종업원이 휘어지는 강판을 바로 잡으려다 졸지에 사고를 당한다. 기계에 손이 말려들어 오른쪽 손가락 네개를 반넘게 잘리고 만 것이다. 급히 병원에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불구신세를 면치 못한다. 치료비는 물론 회사에서 물어줬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보상 한 푼 못받고 회사에서 쫓겨난다.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한강'에 나오는 이야기다.

산업화 걸음마 단계이던 당시만 해도 그 비슷한 일들은 어디서나 다반사로 일어났다. 물품을 만들어 파는데만 급급했지, 산업안전이나 근로시간 준수 등 근로조건엔 거의 무감각했다.

1970년 11월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청년 전태일(당시 22세)이 분신 자살한 것도, 바로 그같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바로 잡아달라는 호소의 몸부림이었다.

통풍도 안되는 곳에서 원단이 풍기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에 두통을 앓고, 쌓이는 실밥 먼지로 폐병에 시달리는 어린 여공들, 그것도 하루 15시간이 넘는 노동에 최저 생계비의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저임금, 이런 것들이 그 때 청계천 피복공장들의 노동환경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를 밑돌다가 간신히 조금 오르기 시작하던 때니 오죽했겠으랴.

그랬던 우리도 이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섰다.

당연히 근로환경 및 조건도 훨씬 나아졌으리라 싶었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2006년)은 2천357시간으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길다고 한다. 그것도 OECD 평균 보다 무려 580시간이나 더 많다고 한다.

그 뿐 아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다친 근로자가 자그마치 9만147명이나 된다. 그 중 사망자가 2천406명이나 돼 하루 평균 7명꼴이다.

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로 치면 1.92명으로 2004년 미국의 0.53명, 일본 0.3명, 영국 0.07명 등에 비해 5배 이상 높다고 한다.

세계 12~13위의 경제대국으로 조간만 선진국에 진입한다고들 하지만, 근로현장은 이처럼 한참이나 후진국 수준이다.

특히 산재 사망자의 절반이 넘는 수(1천383명)가 안전사고로 숨졌다. 건설현장 추락사고로 418명이 숨졌고, 제조업 현장에선 기계에 감기거나 끼여 목숨을 잃은 근로자가 150명이다. 여전히 재래형 안전사고 사망 비율이 지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해 7월 노동부가 1천82개 사업장을 점검해본 결과 94.8%나 안전관리 소홀로 나왔다 한다. 게다가 안전보건조치 의무 감독 인력도 턱없이 모자라, 산업안전감독관 한 명이 맡아야 하는 사업장이 무려 3천300여개(2006년 기준)나 된다고 한다. 1천개 미만인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자그마치 3~5배나 많다는 것이다. 역시 국민소득 수준만으론 후진국 오명을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새삼 실감케 해준다.

산재가 당사자나 가족에게 큰 불행인 건 말할 것도 없지만, 기업이나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너무 크다. 우선 아까운 인력상실 및 사기저하는 물론이고, 금전적 손실 또한 엄청나다.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연간 16조2천113억원이나 돼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액 2조원(2005년 기준) 보다도 8배나 넘게 많다 한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 보다도 기업 친화를 내세우며 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보았듯이 근로자의 안전 및 삶이 받쳐지지 않으면 모래위 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 친화도 좋지만 근로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 그리고 삶의 질 개선도 못지않게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한쪽에만 치우치면 다른 한쪽은 그만큼 깊은 골이 파일 수도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평범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