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대문화의 보고(寶庫)였다가 개발 열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구 '배다리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창조하고자 지역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았다. 지역 주민들도 흔쾌히 힘을 보탰다.
오랜 기간 서민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그리고 유형문화재가 밀집해 있고, 한국전쟁 후 자연스럽게 형성된 헌책방 거리와 양조장 등으로 유명한 배다리에서 지역문화예술인들과 주민들이 문화축제를 연 것이다.

인천시는 미래 인천을 만들어갈 핵심 사업으로 송도, 청라, 영종 등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기존 도심 곳곳을 재개발하는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는 송도와 청라지역을 이어주는 관통도로가 절실한 상태라고 강변한다. 반면 배다리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예술인들은 배다리의 문화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다리 지역이 인천의 오랜 서민문화 중심지이며 지금도 아벨서점같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헌책방, 그리고 문화관련 장소가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화축제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배다리를 지켜내기 위해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주민들의 결의를 통해 이뤄진 축제다. 개발업자와 시 공무원들을 불러 느끼면서 도시 계획을 짜라는 외침을 담았으며 앞으로도 시민 스스로가 만들어서 즐길 연례행사이기도 하다.

'2008 배다리문화축전'(조직위원장·박병석, 박상문)으로 명명된 이 행사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우각로, 금곡로 일원에서 펼쳐졌다. 또한 '삐까번쩍 야외축제'도 함께 개최됐다.

9일 오후 5시30분 스페이스 빔 우각홀에서 영화 '탐보그란테:망고·살인·광산'을 상영하고, 오후 7시 박상문 공동 조직위원장은 축제의 공식 개막을 알렸다. '우리 시대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청된 신경림 시인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고 물질만능으로 치닫는 우리 시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인문학의 메시지(시인의 시선)를 행사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전했다. 그는 강연 후 인천책전시회와 헌책방 사진전시회 등을 둘러봤다. 개막일 행사는 이렇게 진행됐다.

행사 이틀째인 10일, 본격적인 프로그램들이 이어졌다. '책방 골목 작은 만남'은 인천에 한 군데 있는 배다리 책방 골목에서 헌 책방이 어떤 곳인지 알렸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 학창시절 새 교과서와 참고서를 산다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는 이 곳에서 헌 교과서와 참고서를 사곤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남긴 차액을 호주머니에 챙겼다. 절판돼 구하기 힘든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하고 즉시 구입했을 때의 기쁨 등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학창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함께 '3행시 쓰기', '쪽글 놀이', '다친 책 손질하기', '책 묶기 체험' 등 책방 골목에서 펼쳐진 다채로운 행사는 주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또 이날 저녁 시(詩)다락방에선 박영근 시인 2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행사 마지막날인 11일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교육실에서는 '배다리의 역사·문화적 가치,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를 주제로 한 배다리 포럼이 이뤄졌다. 배다리 영화제, 도서관 벼룩시장, 배다리 그림·글쓰기 한마당, 배다리 디카탐사, 축제와 배다리 문화활동 지원을 위한 기금 마련 먹을거리 장터와 카페 운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배다리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축전과 함께 시민문화예술센터가 기획한 '삐까번쩍 야외축제'는 공연예술과 페이스페인팅, 마임, 퍼포먼스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배다리 지역을 활기찬 거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야외축제에는 10여 개의 동아리 등 외부단체와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해 30여 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축제의 흥을 돋웠다.

두 축제가 합쳐져 문학·음악·미술·사진과 공연, 여기에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 문화포럼까지 축제의 요소들이 빠짐없이 배치됐다.

이미 지난해 6월부터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과 지역 주민들이 매월 넷째주 토요일 '배다리 역사·문화를 여는 마당' 행사를 가져왔던 것이 이번 '배다리문화축전'에서 보다 집약된 형태의 축제로 표출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이 지역의 충분한 문화적 조건과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도로 개설이 시도되고, 도심 재생사업 등 도시의 개발 이익을 기대하는 일종의 개발 사업들 속에서 삶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공간을 외부에 알리고, '개발만이 능사'라는 인식에 대한 전환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배다리의 개발을 놓고 시와 시민사회의 의견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억과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색다른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 배다리는 어떤 곳?

"한국戰후 헌책방거리 형성… 주변 문화유적 산재"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로 불렸다. 이 곳엔 일제 강점기때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에 의해 형성된 시장(배다리)과 한국전쟁 후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서민들이 책을 사고팔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헌책방 거리'가 있다.

배다리 일대는 1897년 경인철도공사가 처음 시작된 지점(옛 우각역) 등 유서깊은 문화유산이 많다. 우리나라 최초로 1892년 개교한 사립학교인 영화학교, 1907년 개교한 창영초등학교, 1920년 문을 연 인천양조장 등이 그것이다.

배다리는 인천 노동운동이 시작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에 있었던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조선 노동자 150여 명이 1921년 3월 일본인 지배인의 노동 착취에 분노해 파업을 일으켰는데, 이 사건이 인천 노동운동의 시작으로 전해진다.

그래픽/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