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공부'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과 "중·고생들도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중·고교생 집회·시위 참여'에 대해 찬·반 양 쪽의 주장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 논란의 불씨
지난 5일 어린이 날 연휴 기간을 전후해 도내 중·고교생들에게 "5월 17일(토) 휴교령이 내린다. 등교를 거부하고 시위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대량 유포되면서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이 문자 메시지에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5월 17일 단체 휴교 시위', '5·17 등교 거부', '광우병소 0.01g으로 사람이 죽는다. 곧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경찰은 성남 S고교 학생 등을 상대로 발신자 추적에 나섰고 검찰도 '전국 민생 침해사범 전담 부장검사 회의'를 개최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이버 폭력과 보이스피싱 등 '신뢰저해 사범' 척결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나서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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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육청은 이같은 내용의 일명 '문자 괴담'을 '유언비어'로 규정하고 장학사 및 각급 학교 학생부장 20~30명으로 구성된 '안전 지도반'을 편성,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청계광장과 수원역 등 집회 장소에 파견돼 학생들의 안전 지도에 나섰다.
당시 도교육청은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개인별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도교육청으로서도 규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휴교령이 낭설임은 분명히 교육하는 한편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현장 지도에 나섰다"고 밝혔다.
전교조 경기지부와 다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안전 지도에 나선 일부 장학사 및 부장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집에 돌아가라'며 야단을 치는 바람에 어떤 여학생은 울면서 집에 가는 사례도 발생했다"며 "도교육청이 조직적으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집회·시위 참여를 막고 있다 "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4일 도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갖고 "지난 8일에는 고양 S고등학교에서, 9일에는 인천 N중학교와 M중학교에서 '집회·시위에 참여하지 말라. 참여하는 학생은 학칙에 의거해 징계하겠다'는 내용의 교내 방송까지 실시했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는 '학생들의 집단 행동을 각 학교 차원에서 예방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하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시민단체들은 "경찰들이 고교생들까지 수사하는 행위는 국민의 표현·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국민이 아닌 정권에 충성하던 과거 공안경찰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며 규탄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는 "기성세대들은 '요즘 대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처럼 중·고교 시절부터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됐다고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느냐"며 "학생 감시·탄압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지적했다.
전교조 경기지부 유정희 지부장도 "3·1만세 운동, 4·19의거, 5·18 등 대한민국을 바꾼 근·현대사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이었다"면서 "중·고생들도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또다른 일각에서는 "학생들은 '공부'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아직 정치·사회적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중·고교생들이 일부 어른들의 정치 논리나 일시적인 군중 심리에 휩쓸려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우려했다.
여중생 딸을 둔 양순미(38·수원시 장안구)씨도 "자칫 어린 학생들은 '미국소 = 광우병소'로 잘못 인식할 수 있다"며 "정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정식으로 이번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아이들이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꺼진불 vs 지핀불… "관심없다-이슈참여" 아이들 속내도 양분
# 일선 학교 현장 반응은 ?
문제의 메시지를 받은 중·고생들은 대부분 무덤덤한 반응이거나 '재미삼아' 친한 친구에게 재발송하기도 했다.
안양 K중학교 2학년 A(15)군은 "이번 달 초순 거의 매일 '매일 패스트푸드 점에서 사용하는 햄버거 고기가 미국산이다'라는 내용의 문자가 계속 왔었다"면서 "같은 내용의 문자를 계속 받다보니 다소 짜증스러웠을 뿐 직접 시위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성남 S고교 B(17)양도 '쓸데없는 문자가 또 왔네'하면서 대부분 어이없어 한다"고 했다.
반면 수원 K고 D군(18)은 "광우병 괴담이 떠도는 것이나 광우병 관련 집회에 학생들이 참석하는 것은 학생들이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어른들도 학생들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좋은 시선으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2.0 세대" 자기주장 강한 디지털 10대 일컫는 신조어
'88만원 세대'에 이어 최근 미국 수입소 논란과 관련해 각종 집회·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을 일컫는 신조어. 이들의 특징은 ▲자기 주장과 표현력이 강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소통에 능숙하다 ▲댓글 하나로 수만명을 모으는 등 사이버 공동체에 익숙하다 ▲불합리성에 대해 거부감이 크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미 자기 주장과 표현력이 강하고 불합리에 거부하는 세대는 '신세대' 'X세대' 등 이전에도 꾸준히 있어 왔다"면서 "청소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말장난 일뿐"이라는 비판도 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