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경제성적표가 궁금했는데 당장 눈에 띄는 아이템은 수출증가다. 지난달에만 수출증가율이 27%를 기록했다. 철강·자동차·조선·정보통신 등 수출효자업종의 대기업들은 고유가 등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선방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수출이 둔화되어 걱정이었는데 다행스럽다.
미국 달러 값이 1년 전의 923원에서 5월15일 현재 1천45원으로 13%나 상승하는 등 고(高)환율 덕분이다. 환율이 지나치게 높아진 것은 비단 MB정부 탓만은 아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의 '셀 코리아'가 본격화하면서 환율이 급등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작금 환율급등에서 새정부는 자유롭지 못하다. 경상수지 적자 방어는 물론 수출제고를 통해 경기를 떠받치려 정부가 의도적으로 고환율정책을 견지해 온 때문이다. 경쟁상대국들인 중국·인도·대만·싱가포르 정부는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자 환율하락을 용인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역(逆)으로 환율상승을 부채질했던 것이다. '나 홀로 상승'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환율은 필연적으로 수입물가 급등이란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을 초대했다. 지난 1년동안의 수입물가 상승은 최근 10년이래 최고수준인 31.3%를 기록했다. 4월에만 원자재가격이 58.5%나 올랐으며 같은 달 소비자물가는 4%나 상승했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정부가 집중관리해온 52개 생필품 물가상승률은 전년보다 5.88%나 상승, MB정부의 첫 물가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국내경기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은 당연했다. 내수경기를 가늠케 하는 3가지 경제지표인 신용카드 승인액과 백화점 및 할인점 매출액이 지난달 동반하락했다. 설비투자·산업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도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3월의 신규채용실적은 18만4천명으로 최근 3년이래 가장 낮았으며 4월에는 영세기업들을 중심으로 임시직 근로자 20만명이 일자리를 상실했다. 민간소비는 올 1분기 3.5%증가에 그쳐 평시수준을 밑돌았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매출부진이 특히 심했는데 주택가 상점들을 뜻하는 '기타종합소매점'의 매출액은 1.3%나 감소했다.
지난 1년 수입물가상승률 31%중 환율이 기여한 부분은 약 3분의1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파이부터 먼저 키우고 보자는 이 대통령의 경영철학은 내수경기 침체를 가속화시켰고 덕분에 서민경제는 더 위축되었던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지난달 28일 한국경제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공식선언하면서 추경편성 등 인위적인 경기진작대책의 필요성을 흘렸다. 그리곤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압박하기도 했다.
반도체 등 첨단정보기술업종의 고용창출효과가 낮아진 상황에서 환율상승으로 수출경쟁력을 높인다 하더라도 일자리 창출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또한 환율과 수출과의 연결고리가 과거보다 많이 약해져 환율의 수출증가 효과도 신통치 못하다. 더구나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고용증가는 별로인 채 자칫 물가상승만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올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하강속도는 빨라질 것이 분명한 터에 세계경기도 점차 둔화되어 지금과 같은 수출신장이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다. 갈수록 태산이다.
출범 100일도 안된 정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도처에 지난 정부의 잔재들이 온존하고 있어 아직 홀로서기 할 준비도 덜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MB노믹스를 보면 한물간 '선(先)성장, 후(後)분배'의 개발정책을 재확인하는 것 같아 개운치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