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1933년 3월4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제32대 대통령에 취임했을때 대공황은 3년8개월째 계속되어 미국 경제는 중환자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노동인구의 근 3분의 1인 1천300여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많은 가족이 해체되고 아사자(餓死者)가 나올 정도로 심각했다.

루스벨트는 취임날부터 붕괴된 경제를 살리기위한 100일회의(The Hundred Days) 대장정에 돌입했다. 100일동안 매일 주요 각료와 참모회의를 주재하고 경제회생을 위해 뉴딜정책을 각 분야별로 성안한 산업진흥법안 등을 의회에 넘겼으며 의회에서는 여야가 하나가 되어 이를 신속하게 입법화 했다. 또한 정부의 정책과 하는 일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알리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소통(疎通)만이 국난극복의 지름길이라고 보고 매주 2회씩 기자회견 등 수시로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루스벨트가 미국의 죽은 경제를 살리고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출범한지 100일도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수입 결정에 따른 반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민을 쉽게 생각한 정부의 안이한 자세로 인해 자초한 것이다. 쇠고기협상은 노무현 정부때부터 해오던 것이어서, 또는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아 방심한 것인가.

정부 특히 농림당국이 미국과 합의한 직후 1회성 발표만 요란하게 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것은 한심하다. 국민의 식생활 및 건강과 직결되고 국내 농축산업에의 영향과 보호 등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정치권은 물론 국민 각계를 상대로 합의 내용과 수준, 광우병 대책 등에 관해 거듭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 전단지 등을 통해 괴담, 괴설이 마구 번지고, 농민 시민단체 야당이 반대하고 국민들이 우려를 하자 당국이 뒤늦게 허둥대며 안전을 강조했으며, 결국 반발여론 덕분으로(?) 비록 외교서한형식으로나마 검역주권을 어느정도 확보한 것 등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정부-농림당국의 무사안일로 인한 쇠고기파문은 한미자유무역(FTA)협정안의 국회비준 등 해야할 일들이 산적한 새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반발여론이 확산되는데도 엉거주춤하며 청와대쪽만 쳐다본 집권당인 한나라당도 책임이 크다. 미국과 쇠고기수입에 합의한 직후 정부를 독려해 대국민 계몽과 함께 대야 설득을 끈덕지게 폈어야했다. 여전한 눈치보기 속에 집안문제에 매달리다가 이 대통령의 지적을 받고 뒤늦게 17대 마지막 국회를 열었으나 새정부가 경제회생과 일자리 창출 등과 관련해 속을 태우는 한미 FTA비준은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노무현정부때 집권당으로 FTA합의에 동의했던 통합민주당이 이제와서 쇠고기 수입과 연계하는 것은 책임있는 공당의 태도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파문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끝내는 취임 88일만에 국민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해야만 했다. 이 대통령이 "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고…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한것은 원인을 정확하게 짚은 것이다. 사실 대화-소통은 힘든 고행(苦行)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행을 감수하지 않고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이번 파문이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이 얼마나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귀중한 기회가 된 것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여러차례 국민을 깍듯이 성실하게 섬기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당연히 대통령만이 거의 매일 얘기하고 일하고 총리·장관, 수석비서관, 그리고 여당이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일은 하루빨리 시정돼야한다. 국회에서 농림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부결됐다고 쇠고기 파문이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국민의 건강을 위해 병든 소는 철저하게 가려내는, 검역주권을 행사하는 한편 국민설득에 정성을 다해야할 것이다.

오는 6월 3일로 이명박 정부는 출범한지 100일을 맞는다. 다음날(4일)은 52명의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재보궐선거가 실시된다. 비록 지방관련 재보선이지만 이명박정부 100일에 대한 첫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