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 (안산예총사무국장)
다시 현충일(顯忠日)이다. 늘 그랬듯이 올해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추념식이 열리고, 오전 10시에는 전국에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리며, 거리와 가정에 조기(弔旗)가 내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저 그뿐, 늘 그랬듯이 올 현충일도 수많은 겉치레 행사와 마지못한 의식(儀式)들을 뒤로 하고 이내 묻히고 말 것이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넋을 망각의 어둠 속에서 다시 불러내 그 이름을 되새기며 나라의 이름으로 고마움을 나타내고 우러르는 날이다. 현충일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들의 목숨과 피와 땀, 그리고 그들 가족의 눈물과 한숨과 고통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움으로써 대한민국의 과거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시키고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한 울타리 안의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바로 보여주는 날이다.

국립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는 구한말 의병에서부터 치욕적인 일제 36년의 독립운동가, 상상하기조차 싫은 동족상잔의 6·25전쟁과 베트남전의 전몰 장병, 남북대결로 위대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아 세우고, 대한민국을 침략전쟁에서 지키고, 국민의 명령에 따라 외국의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았던 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10대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라서고 우리는 행복한 자유와 번영을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은 호국보훈의 달에 즈음하여 나라를 지키고 희생한 그 위훈에 '감사하는 날'이어야 하고 '은혜를 잊지 않는 날'이어야 하며 '보답하는 날'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14만명 꽃다운 나이의 젊은 피가 삼천리 금수강산을 물들였던 6·25전쟁을 미군 때문에 성공 못한 통일전쟁이라고 아쉬워해야 진보가 되고,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은 5천명 이상의 참전용사를 미국의 용병이라고 비웃어야 자주파(自主派)가 되는 세상이다. 전쟁 중에 북에 잡혀간 국군포로 가족들의 고통의 세월에 대한 하소연이 그게 남북관계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핀잔으로 되돌아오는 세태이기도 하다. 누가 서해교전 전사 장병 유가족들이 4년째 정부의 철저한 외면 속에 피눈물 어린 제사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6월에 6·25전쟁일만 있느냐"며 "6·10항쟁도 있고 여중생 미군장갑차 사건도 있으니 6월을 '보훈의 달'이 아니라 '민중항쟁 기념의 달'로 부르자"는 집단이 정권의 울타리이자 애국투사로 대접받고, 청와대에 초청받아 가는 세상이 된 때도 있었다. 감사를 모르고, 은혜를 잃어 버리고, 보답할 예의까지 놓아버린 국가는 조국이 아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시작하자. 새로운 이명박 실용정부를 믿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믿는다. 누가 이 조국이 위태로울 때, 국가가 나의 목숨을 원할 때 주저 없이 목숨을 바치며 사랑하는 가족과 대한민국을 지키겠나?

아직도 6·25전쟁과 월남 참전 이후 부상으로 보훈병원에서 50년간 병상에서 한 발짝도 걷지 못하고 있으며 그 무서운 고엽제 후유증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싸우며 투병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에 즈음하여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의 희생과 위훈이 헛되지 않도록 정책적 보답과 은혜를, 그리고 위상정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