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된 이슈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왜 문제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가. 여기엔 정책당국과 저항하는 시민사회 간에 사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변모한 시민사회의 내적 성숙도를 간과한 채 협상과 이후에 야기된 문제에 대응해 왔다.
시민사회는 그 동안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대변되는 신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관심사보다는 개인의 생활과 건강(웰빙)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건강한 식생활을 꿈꾸는 새로운 세대는 광우병 쇠고기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고, 정부는 이 같은 사회적 변화를 읽어 내지 못한 채 대응해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이다. 정부 측은 기성세대의 낡은 시각으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묵과해 일이 커졌다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시각차'다. 효율을 추구하는 정부와 민주적 방식에 입각해 민의의 수렴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일사불란한 질서를 효율의 가치로 생각하는 정부와 개인의 생활과 편익을 우선시하는 새 세대의 문화들 간의 시각차 말이다. 이들은 서로 충돌하고 상승하면서 확대 재생산을 거듭해 낸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과 민주주의, 조직중심과 개인중심의 문화는 합의가 될 수 없는가? 아니다. 합의의 전제인 '소통'만 가능하다면 말이다.
우리사회는 이미 소통에 의해 난마처럼 꼬인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바로 이른바 방폐장이라고 불리는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의 설치 문제로 인한 갈등 경험이다.
효율을 앞세운 정부가 이해관계가 복잡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소통을 도외시한 채 부안에서 추진했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던 경험과 반면 시민과의 소통을 우선한 경주지역에선 일사천리로 방폐장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소통을 우선하는 민의의 수렴이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이 높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선 아직까지도 일시적 효율을 앞세워 소통을 등한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도 전 국민이 이해대상임에도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무시하려다 일이 커져버린 것이다.
앞으로도 새 정부는 우리사회를 선진화하기 위한 많은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의욕적으로 준비된 국책사업을 진정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소통이 우선되어야 한다. 시민사회를 단순한 홍보의 대상, 설득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능적 소통이 아니라 열린마음이 전제된 진정한 이해와 공감속에서 만들어지는 소통이 필요하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장애인고용분야는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소외지대이다. 그 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고객이 되는 장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정책적 노력과 배려가 더욱 요구되는 분야이기에 정부의 소통노력은 한층 배가되어야 한다. 효율만 따지기보다는 장애인들의 욕구가 올바로 수렴될 수 있는 소통, 그리고 그 욕구가 정책판단의 우선이 되는 것이 민주화의 참모습이고 개인의 다양성이 함께 존중되는 그런 사회가 아닐까. 효율과 민주주의를 통해서 진정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통로는 바로 열린 마음이 전제되는 소통에 있다. 오늘 아침의 파란 하늘처럼 투명하고 산뜻한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