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논설위원)
오늘이 6·25발발 58주년이다. 10년 주기인 강산의 계산법으로 해도 다섯 번을 넘겨 여섯 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간세상은 이보다 더해 그 속에서 숱한 부침을 거듭해 왔고, 사는 방법 또한 여러 갈래로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변화하기를 거부하며 우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있다.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양극의 대치상황으로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 즉 이념이 조화가 아닌 반목상태의 양면성을 보이면서 사회를 양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생각의 고정이나, 정치 및 사회에 부조화가 접목되면서 반대편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풍토가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면 틀린 말일까. 특히 첨단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생각의 다양성이 특정한 이슈에서는 한곳으로 몰리는 획일화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리더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함이라는 생각이다. 게리 맥킨토시, 새무얼 리마는 "리더는 단지 효율적으로 일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기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자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라고 리더를 정의했다. 수단과 방법, 즉 과정이 좋지 않으면 일에 맞는 리더의 가치관 접목과 바른 판단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그것이 통치자의 행위라면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데서 사태는 심각하다. 그래서 바른 정치의 첫째 조건으로 원활한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소통 장애로 여론을 바로알지 못하면 의도가 좋아도 국정운영이 한 쪽으로 치우쳐 방향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의도와는 상관 없이 반대 급부 요인이 발생하며, 이는 국정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작금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민들이 실정을 거듭 경고해도, 듣지 않고 결과를 미리 내 한 방향으로만 내닫는 일방통행식 정치행위가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나서야 끝을 고하는 형국이다.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사과와 추가협상의 원인이 된 코드인사·쇠고기정국 등이 진행형이라는 데서 국민들의 공분의 크기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이대로가 맞는지 한 번 정국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 사안을 놓고 국론분열이 한 달을 훨씬 넘기면서 또 다른 이슈가 더해지고 있다는 데서 그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번쯤 숨을 고르며 지켜보는 것도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정권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일방소통을 강요한 데서 사태가 시작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소통에 대해 역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고 본다. 소통은 쌍방에서 작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고 있다.

중국 전한(前漢)시대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로 망양보뢰(亡羊補牢)가 있다. 지금은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이지만, 당시에는 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실패 또는 실수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수권자가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고, 되풀이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체제를 다지고 있는 측면에서, 국민들도 소통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인내와 아량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오늘은 국토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6·25의 날이다.

대개의 국민은 오늘을 보내면서 국론이 하나로 모이는, 분열된 국론이 수습돼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