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경 (인하대 교수·아태물류학회장)
지난 몇 달 동안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통해 컨테이너가 본의 아니게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장면 1: 세종로사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린 차단벽을 사이에 두고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장면 2: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에 보관된 미국산 쇠고기의 반출을 막으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경찰 간에 승강이가 이어졌다.

장면 3: 화물연대 파업사태로 컨테이너 반출입이 중단되면서 부산항의 항만기능이 마비되고 있다.

수출입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컨테이너가 요즘 들어 굴욕(?)을 당하고 있다. 물류를 전공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컨테이너가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수출입 화물의 운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하게 되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작년 우리나라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1천748만 TEU(1TEU는 6 컨테이너 1개)에 달하였고 대표적인 수출입 항만인 부산항은 1천326만 TEU를 처리하여 중국 항만의 추격이 거센 가운데도 세계 5위의 컨테이너항만의 위상을 달성하였다. 우리나라가 한 해 동안 처리한 컨테이너를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24.7번 돌 수 있는 길이에 해당한다고 하니 가히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다.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이제 우리나라 수출입과 경기 동향을 손쉽게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지표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컨테이너는 싣지 못하는 화물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적재되는 공산품에서부터 냉장 및 냉동식품, 목재, 액체화물 심지어 자동차까지 컨테이너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컨테이너가 수출입과 전혀 관련이 없는 건설현장의 임시사무소, 임시주택, 임시교실로 사용되는 외도를 하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출입 화물을 실어 나르는데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사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직사각형의 강철박스가 해상운송, 해운산업 나아가 국제통상과 세계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최근 뉴스위크와 이코노미스트 등의 기자로도 활동했던 경제학자인 마크 레빈슨은 'THE BOX'라는 저서를 통해 1956년 컨테이너 박스의 탄생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운송도구의 표준화라는 단순한 혁신이 우리의 삶과 세계 경제를 어떻게 혁신해 왔는지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컨테이너의 영향과 혜택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이 본 나라의 하나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한다. 컨테이너 운송서비스의 등장은 1960년 대 세계 경제에서 미미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던 우리나라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무역국가로 위상을 높여 나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컨테이너를 이용함으로써 저렴해진 국제운송비가 미국이나 일본으로의 수출 길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부산항이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최초로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한 대진해운은 이후 세계적인 해운기업인 한진해운으로 성장하였으며 이후 세계적으로 컨테이너선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크게 발전하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도 컨테이너는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 컨테이너에 인식장치를 부착하여 수출업체나 수입업체가 언제 어디서든지 컨테이너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 내부에 있는 화물의 상태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지능형 물류기술까지도 개발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경제상황이 매우 어렵게 전개되고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가 전력으로 뛰어야 할 때이다. 이제 컨테이너를 시위나 파업현장이 아닌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생산과 수출현장으로 돌려 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