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임기시작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이제야 간신히 개원을 한다고 한다. 헌정 사상 처음 의장도 선출 못한 채 첫 개원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도 넘겨버렸다. 국회법엔 국회의원 임기 시작일(지난 5월 30일)로부터 7일째(6월 5일)에 개원식을 갖도록 돼 있다는데, 그런 건 이미 무시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난달 20일엔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첫 세비가 지급되기도 했다. 1인당 900만원이 넘는다. 엄밀히 말해 무노동 유임금이다. 이제 열흘쯤 지나면 두번 째 세비가 또 지급될 것이다.
그래도 그들 의원들 중엔 염치라는 걸 좀 아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 의원은 아무 한 일도 없이 받은 세비가 마음에 걸렸는지, 지역구민들에게 환원한다며 암송아지 네마리를 사 축협에 사육을 위탁했다 한다.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의원의 처지가 참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쇠고기 파동 촛불시위를 빌미로 한달 넘게 등원을 거부해온 야당 의원들이나, 이를 제대로 포용 못하는 거대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한심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도대체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우선 야당 의원들만 해도 그렇다. 쇠고기 협상에 문제가 있으면 마땅히 제일 먼저 국회에서 따졌어야 옳았다. 그것이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이다. 직접 민주주의 방법이라 할 촛불시위는 일단 국민들에게 맡겨놓고 말이다. 정히 국민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여겨졌으면, 먼저 국회에 등원해서 그날 그날 회의를 마친 다음 밤에 촛불을 들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여당 의원들 또한 정치력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기껏 한다는 일이 단독국회라도 열어 국회의장부터 뽑겠다며 으름장이나 놓고 있었으니, 일이 제대로 풀릴 리 없다. 보다 폭넓은 견지에서 야당이 등원할 최소한의 명분부터 주었어야 했다고 본다. 물론 야당이 요구한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 검토나 '쇠고기 국정조사' 등을 잠시나마 수용할 뜻을 비쳤던 건 그런대로 평가할만 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단독국회 으름장으로 모두 헛일을 만들어 버렸다.
여야의원들이 한달 넘게 직무를 유기한 사이 국민은 사상 초유의 고유가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물가와 경기침체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돼버렸다. 시급한 경제회생과 민생안정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시장 활성화 및 민생회복을 촉진할 갖가지 입법이 장기간 표류하는 사이 애꿎은 국민들만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아까운 세월 다 보내고 여당에서 다시 7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했다지만, 야당측 반응이 시큰둥해 마음을 졸였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녕 국회는 어디로 갔는가"고 묻고 싶었다. 시급한 민생문제로 그 어느 때 보다도 국회를 필요로 하는 이 때, 그들은 빈둥(?)대며 아까운 혈세만 축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꼴 보자고 국민들이 투표장에 갔던 건 결코 아닐텐데도 말이다.
간신히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내일 국회 개원에 그럭 저럭 합의하는가 싶더니, 제1야당인 민주당도 이에 동조했다는 소식이다. 늦게나마 정말 다행이다. 이제 개원이 합의된 이상 그동안 밀렸던 시급한 문제들을 최선을 다해 해결해주기 바란다. 지난 잘못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쓸데없는 기싸움이나 하면서 또 다시 공전시키지 말고. 그래야 세비 값이라도 하는 게 될테니까.
박 건 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