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0년래 최고수준인 5.5%를 기록했다. 선행지수인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대비 10.5%나 증가, 1998년 11월 이래 최고수준이다. 지난 5월에만 원자재가격이 80%이상 상승, 1980년 통계작성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원-달러환율은 정부의 강력한 시장개입 덕에 그런대로 버티고 있으나 얼마나 견딜지 두고 볼 일이다. 올해 경상수지는 1997년 이후 10년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연중 최저수준으로 무너져 내렸으며 가계빚도 사상최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998년 85%에서 지난해 150%로 증가, 부채상환능력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단기외채 비중이 급격하게 불어나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고유가에서 촉발된 해외발 열대성 저기압이 미구에 한반도를 강타할 예정이다.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 않으나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메가톤급 슈퍼태풍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일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제3차 오일쇼크가 시작됐다며 범국가적 위기대처를 당부했을까.

정부는 지난 외환위기 때보다 외환보유고가 상대적으로 풍부할 뿐아니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상당수준 낮아져 애써 위안하는 눈치다. 그동안의 재벌성적표가 궁금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식이니 말이다. 국내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1997년 당시 400%에서 최근에는 100%로 떨어지는 등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체기업 평균수치일 뿐 재벌부문의 내역을 보면 그리 편치 못하다.

30대그룹의 계열사수는 2005년 3월 664개에서 올 3월에는 843개로 27%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그룹 계열사의 자산총액규모는 644조원에서 918조원으로 42.6%나 증가,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은 한층 심화됐다. 내부거래도 급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편 같은 기간 30대그룹의 부채총액은 403조4천억원에서 556조7천억원으로 최근 3년간에 무려 153조원이나 증가했다. 특히 올 1월부터 5월까지 은행권의 대기업대출 증가액은 10조9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1조7천억원의 6.4배에 이른다. 대우해양조선·현대건설·하이닉스·산업은행 등 대규모 공기업매각에 대비한 실탄확보 내지는 매출부진에 따른 운전자금 확충 때문이다. 전체기업들의 부채총액도 올 3월 현재 993조원으로 지난 연말대비 5.7%나 증가하는 등 5년래 최고수준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최근 급성장중인 STX그룹·이랜드그룹 등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금호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대형 인수합병 등으로 그룹계열사수가 2005년 불과 18개사에서 2008년 3월에는 52개사로 3년만에 3배나 급증했다. 얼마전 하이마트를 인수해서 주목을 받았던 유진그룹의 사세확장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재벌들은 공통적으로 부채비율급증이란 반갑지 않은 손님도 맞이해야만 했다. 피인수기업들의 부채승계는 물론 부족한 인수대금조달을 위해 대규모 은행빚을 끌어들인 탓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부채총액이 무려 22조원으로 불어났으며 지난해말 이랜드리테일의 부채비율은 651%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랜드그룹은 매출부진에 따른 자금난까지 겹쳐 주력계열사중의 하나인 홈에버를 매각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STX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널뛰고 있다.

중소기업대출은 설상가상이다. 벌써부터 일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금회수에 문제가 불거지는 등 연체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동안 무리할 정도로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출경쟁을 벌였던 우리·신한·하나은행 등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번달에도 11개월 연속 콜금리를 동결했으나 목하 과잉유동성을 언제까지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만간 금리인상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외국인 주식지분이 국내 총주식자본 803조원의 30%이상을 점하고 있는 것도 주목 대상이다. 지난 시절의 외환위기도 경쟁력이 취약한 일부 기업들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 한 구(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