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의 성적 부진은 새로운 경기 규칙에 대한 선수들의 적응 부족으로 요약된다.
한국의 그레코로만형 선수들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때 김원기(62㎏)가 첫 금메달을 따낸 뒤 6개 대회 연속 금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베이징에서는 55㎏급 박은철(27·주택공사)만 동메달을 따냈을 뿐 나머지 4체급에 출전한 선수들은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결국 금메달 한 개 없이 돌아서야했다.
이같은 부진에 대해 레슬링인들은 새로 바뀐 경기 규칙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입을 모은다.
그레코로만형은 그동안 여러 차례 규칙이 바뀌었지만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크게 변화했다.
자유형과 달리 상반신만을 이용해 공격하는 그레코로만형은 점수가 잘 나지 않아 연장전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올림픽종목 퇴출까지 거론되자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아테네올림픽때 3분 2회전으로 하던 경기방식을 1회전 2분씩, 3전2선승제로 승패를 가리도록 바꿨다.
이전 국내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피나는 훈련으로 체력을 다져 경기시간 6분동안 상대 선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바뀐 규칙은 1회전 처음 1분간은 스탠딩 자세로 하고 나머지 1분간은 30초씩 상대를 파테르 자세에 놓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체력으로 줄기차게 상대를 밀어붙이던 이전의 한국 스타일이 제대로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많은 점수를 따더라도 한 회전만을 이기게 되면서 큰 기술보다는 실점을 적게 하고 점수 관리를 잘해야 하는 요령이 필요했는데 한국 선수들은 효율적으로 경기를 운영하지 못했다.
금맥이 끊어진 그레코로만형은 이번 대회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올림픽에서는 새로운 전략, 전술을 찾아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박무학 경기도레슬링협회 전무이사는 "선수들의 성적부진은 새로운 경기 규칙에 대한 적응력 부족과 정신력 약화가 원인인 것 같다"면서 "경기 규칙도 중요하지만 어린 유망주들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집중돼 4년 뒤 런던 올림픽대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