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경인지역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단 한개의 금메달을 따내지 못하고 부진한 가운데 장미란의 세계신기록과 금메달은 너무나 값진 메달이었다.
사실 장미란은 어릴적부터 역도 재목감으로 인정받아온 선수. 긴 허리와 튼튼한 다리를 타고 나 일찌감치 고교시절부터 한국 여자 역도를 이끌어 갈 기대주로 평가받은 장미란은 키 170㎝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안정감과 순간적인 집중력도 타 선수를 능가, 국내엔 적수가 없었다.
장미란은 상지여중 3학년이던 1998년 10월 역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지도자의 권유로 바벨을 처음 잡았고 다음해 원주공고 시절부터 국내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1999년 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용상 102.5㎏, 합계 177.5㎏으로 동메달 2개를 따면서 역도계에 이름을 알렸고 2004년 춘계여자대회에서 3관왕이 된 이후로 국내에서 한 차례도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국제 무대에서도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5년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세계 챔피언에 오른 장미란은 다음 해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2년 연속 최대 라이벌 무솽솽(중국)을 누르고 2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5월 원주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초청역도대회에서는 합계 318㎏을 기록, 한국 여자역도에서 처음으로 세계기록의 주인공도 됐다.
물론 장미란의 선수 생활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작년 초 전 소속팀 원주시청과 결별하고 다니던 고려대를 자퇴하는 등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장미란은 그러나 지금의 고양시청에서 새둥지를 틀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뒤 이중등록 규정도 바뀌어 고려대에 복학까지 하며 경기력 향상에 정성을 기울였다. 결국 2007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무솽솽을 누르며 3연패를 달성한 그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생애 첫 금메달을 따내며 독주시대를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