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논설위원)
우리는 지금 양극화를 극명하게 경험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끊임없이 기록에 도전하는 스포츠 제전 올림픽에서의 역정 드라마다. 여기에는 가식이 없다. 승자와 패자의 갈림과 이들에게 놓인 현실을 보는 듯한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다를 뿐이다. 그 순간이 이들에겐 진실이며, 국민에게 희열을 주기도 한다. 또 하나는 국민에게 끊임없이 실망을 안겨 한여름을 더욱 덥게 해 짜증나는 정치판이다. 이들에겐 진실게임이 없어 보인다. 소모적인 정치공방뿐이다. 18대 국회만 봐도 그렇다. 임기개시 80여일이 지나서야 식물국회라는 오명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형국이다. 그동안 한 일이라곤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 6개 특위를 구성한 것 외에는 없다. 민생은 립서비스로 보인다.

스포츠와 정치는 '내 탓이오'와 '네 탓이오'로 구별되기도 한다. 선배들이 이룬 영광을 잇지 못해 죄송하다는 여자양궁선수,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군 유도의 왕기춘 선수와 사격의 진종오 선수 등 메달 색깔의 차이는 최민호 선수의 회한처럼 엄청난게 현실이지만, 이들이 되뇐 죄송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죄송과는 느낌이 다르게 온다. 책임을 전가하는 '네 탓이오'가 아닌,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과 국민에게 아쉬움을 남겨 미안하다는 '내 탓이오'로, 국민들이 선수들을 믿고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는 메시지로 충분하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그 안에는 있다 하겠다.

문제는 스포츠로 인한 감동의 물결이 계속되지 않는 다는 데 있다. 다시 국내 현실안으로 돌아 오면 '네 탓이오' 고성이 오가며,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권과 맞닥뜨린다. 진정성과 페어플레이의 스포츠정신은 어디에도 없다. 지난 80~90년대 정치권에서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해 왔다. 대형 스포츠경기 유치가 그것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야구·프로축구 등 프로스포츠를 적극 육성했다. 당시 이런 정권의 스포츠 몰입을 비판해 '스포츠공화국'이란 비난이 일었지만, 해낼 수 있다는 국민 단결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스포츠가 집권 정치인들에게는 정치적 이용가치로 충분했다.

이런 정치 꼼수가 요즘에도 통용된다고 보는 국민들은 없어 보인다. 프로스포츠는 우리의 일상중에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올림픽과 같은 세계스포츠 제전에 몰입하는 국민들도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국민적 피로감과 불신감만 키워 궁극에는 정치무용론으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작금의 정치현실에서 국민의 관심을 빼앗을 대상이 없다. 이뿐아니라 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수시로 확인이 가능해 국민들의 눈에서 정치를 멀게하는 묘수 찾기는 자체가 불가능해 졌다. 올림픽기간 선수들의 선전을 보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치권의 행태가 허구한 날 싸움으로 지새우던 해방 정국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걱정을 넘어 국민들의 화를 키우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를 건국 원년으로 삼느냐,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진 해부터 치느냐를 놓고 다투다 8·15 경축식을 따로 개최하는 모습에서도 우리 정치현실이 처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국민들은 같은시기에 올림픽에서는 도전정신과 하나된 마음을, 정치권에서는 국론분열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63년 건국 60년 동안 경제 규모 750배, 1인당 국민소득 300배가 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또한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을 거치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반도 다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지난 역사를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로 규정하고 신성장동력 구체화를 선언했다. 신성장동력은 새로운 신화를 써가기 위해 늦출 수 없는 지상과제라는 데서 여든 야든 그안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는 진정성이 전제 조건이어야 하며, 내탓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하고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