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단은 아시아에서 세번째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양과 질적인 면에서 풍성한 성적을 거두며 올림픽 출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또 경기·인천지역 선수(팀)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의 '톱10' 수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국력을 총동원하며 7년간 올림픽을 준비해 온 중국은 사상 첫 종합 1위를 차지하며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중국은 티베트 유혈 사태 진압을 비롯 취재 기자들의 인터넷 제한, 암표상 극성 등 일부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기도 했다.

■ 한국 역대 최고 성적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0개, 동 8개를 따내 금메달 10개로 종합 10위 안에 든다는 당초 '10-10' 목표를 여유있게 달성했다. 금메달 수에서도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이상 금 12)를 넘어서는 13개를 따냈고 전체 메달수에서도 31개로 서울 대회(33개)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땄다.

이같은 성적은 유도·양궁·태권도 등 전략 종목에서 여전히 비교 우위를 지켰고 수영 박태환(단국대)과 여자 역도 무제한급 장미란(고양시청) 등 걸출한 스타 선수가 금메달을 합작한 결과다. 경인지역 선수(팀)인 장미란은 세계신기록 5개를 쏟아내는 월등한 기량으로 정상에 우뚝섰고 '마린보이'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400와 200에서 각각 금·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체육사를 새로 썼다. 남자 역도 77㎏급 우승자 사재혁(강원도청)도 한국 남자 역도의 자존심을 지켰고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한 최민호(KRA)를 앞세운 유도는 은 2개, 동 1개를 보탰다.

태권도는 경인지역 선수인 여자 57㎏급의 임수정(경희대)과 67㎏의 황경선(한체대·이상 수원시청 입단 예정) 등이 출전한 4체급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 종주국의 위용을 과시했고, 배드민턴은 혼합복식에서 이용대-이효정(이상 삼성전기)조가 우승하는 등 금·은·동메달을 1개씩 수확했다. 한국 야구는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기간 열기를 끌어올렸고 양궁은 4개의 금메달 중 남녀 단체전에서 2개를 따내 체면을 세웠다.

금메달 못지않은 값진 메달도 있었다.

유럽 강호들의 틈새 속에서 여자 펜싱 플뢰레에서 남현희(서울시청)가 은메달을 따냈고 남자 체조 평행봉에서도 유원철(포스코건설)이 은메달을 따내 한국 체조의 희망을 살렸다. 인천 벽산건설 선수들이 합류한 여자 핸드볼은 노르웨이와 준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도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줘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꺾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한국은 6개 대회 연속 금빛 행진을 이어온 레슬링이 이번 대회에 동메달 1개를 얻는데 그쳤고 탁구도 남녀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냈을 뿐 개인전에선 힘겨운 경기를 했다. 사격은 진종오(KT)만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결선에도 나가지 못하는 실력 차이를 보였다.

■ 공룡 중국…그들만의 올림픽(?)

'공룡' 중국이 최초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입장에선 우려했던 돌발 사태 등이 일어나지 않았고 경기력 면에서는 종합 우승을 일궈내 만족할만한 대회였다고 볼 수 있다. 또 일부 종목에서 나올 가능성도 점쳐졌던 편파 판정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지적이라 대회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대회 안 쪽을 살펴보면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사실 3월24일 성화가 채화될 때부터 조짐이 심상치가 않았다. 티베트 유혈 사태 등에 항의하는 시위자들이 난입하는 등 난장판이 됐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베이징올림픽은 점차 '그들만의 올림픽'이 돼갔다. 13만7천㎞에 달하는 역대 최장거리 봉송이 계획돼 있던 베이징 성화는 축제 분위기에서 달리지 못하고 삼엄한 경비 속에 시위대를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 부쩍 민감해진 중국 당국은 올림픽 취재를 온 세계 각국 기자들의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는 무리수까지 뒀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 등 인권이나 티베트 관련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게 해놓았고 주요 시설을 배경으로 리포트를 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전에 취재 신청서를 내야 가능하도록 했다.

암표상이 기승을 부린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였다. 대부분의 경기장에서 관중석은 비었는데 표는 구할 수 없는 기현상이 잇따랐다.

또 지나친 교통 통제로 베이징 시내 화물차 진입이 어려워져 이삿짐 업계와 유통업체가 거의 휴업 상태가 됐고 일부 공장들도 원자재 반입이 어려워 가동을 중단한 곳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