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영 (논설실장)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를 보는 많은 국민들의 시각이다.

사상 최대의 득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돼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하게 취임했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출범과 동시 불거진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인사 파문이 정권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곧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두달 넘게 국정을 마비시켰다. 갈수록 거세게 타는 촛불에 대통령 스스로 두번씩이나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까지 터져 가뜩이나 멀어진 남북한 관계를 한층 멀리 후퇴시켰다. 여기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파문이 일어났는가 하면, 국회마저 촛불을 빌미로 장기 파행을 거듭, 국정마비에 부채질을 해댔다. 지금은 또 종교 편향을 탓하며 불교계 시위까지 이어지는 판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악재는 경제난이다. 7·4·7(경제성장 연간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대국 진입)을 내세우며 경제대통령을 자처했지만, 7·4·7은 이미 물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연초부터 국제유가 등이 급등하면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보였지만, 오직 7·4·7만 의식해 외환시장에 개입, 환율을 급등시켰다. 환율 급등이 물가상승을 한층 부추겨 서민경제를 타격하고, 통화옵션 상품 등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그러자 급등하는 물가를 하릴없이 통제해 더욱 기승을 부리게 했는가 하면, 이젠 또 환율을 떨어트린다고 외환 보유고를 털어내는 등 갈팡질팡하기만 했다. 그래도 원·달러 환율은 수그러들지 않아,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 우리 국민소득은 지난해 2만45달러에서 1만달러대로 추락할 것이란 경고마저 나온다.

치솟는 물가는 서민들의 삶을 벼랑끝에 몰아세웠고, 기업은 기업대로 자금이 안돈다고 아우성이다. 당연히 취업문도 좁아졌다. 지난 7월 신규 취업자 수는 15만3천명으로 1년전 30만3천명의 절반에 그쳤다. 대선 공약인 60만개 일자리 창출의 겨우 4분의 1 수준이다.

이 모든 게 국민 눈에 곱게 비쳐질 리 없었고, 대통령중심제 국가이다 보니 모든 원망은 대통령에게로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도 이를 절감한듯, 지난 달 8·15 광복절을 기해 새로운 정책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했다. '저탄소 녹색성장' 제시와 함께 법치주의 확립, 공공부문 선진화, 서민생활공감정책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공세적 국정운영을 예고하고 나섰다. 그동안 비싼 학습료를 냈지만, 더 이상 주눅들지 않고 반전과 도약을 시도할 태세로 보인다.

"이제 더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틈도 없고 물러날 길도 없다"고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자못 비장한 각오와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당연히 필요한 자세라 하겠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걸린다. 좌고우면이라면 이쪽 저쪽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은 이 눈치 저 눈치만 보아왔다는 것 같아 괜스레 딱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제부턴 좌우 살피지 않고 독주 독단도 서슴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 일면 섬뜩하기도 하고…. 공연한 노파심일까.

그러잖아도 그동안의 실패가 성급한 성과주의, 일방통행, 국민과의 소통 부재 등에서 비롯됐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그래서 많은 국민의 주문도 바로 타협과 양보, 그리고 국민 설득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의 실책에 대한 철저한 자성에서 출발하고, 국민을 충분히 설득해가며 개혁의지를 일관성있고 차분하게 추진해 달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의 향방을 봐도 그렇다. "국민의 생각을 존중해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았고, "주위의 쓴소리 바른소리를 귀담아 들어달라"가 뒤를 이었다. 그 외에도 "국정 수행에 국민 여론을 반드시 참조해달라" "경제를 살려 살기 편하게 해달라"는 주문들이 주를 이뤘다. "좌고우면할 틈도 없다"고만 할 때는 분명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