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센 오닐 의장은 레이건을 인간적으로는 물론 정책적으로도 매우 싫어했다. 영화배우가 어떻게 감히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 또 정치를 연기하듯 쉽게 생각하고, 오직 인기얻기에만 연연, 연설은 그럴듯하나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속빈 강정 같다고 본 것이다.
1981년 1월 취임한 레이건은 경제살리기를 제 1의 급선무로 삼았고 공약대로 감세와 복지정책의 축소, 작은정부, 공급자 중심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국방예산의 증액 등을 적극 추진했다.
당시 상·하원은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어 모든 각료와 백악관 참모들이 총동원되어, 민주당 의원들에대한 설득과 공략을 벌였고, 자신은 수시로 TV연설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경제살리기에의 협조를 호소했다. 이때 민주당의 강경파는 오닐에게 연말까지 단 한건의 의안도 상정시키지 말고, 레이건을 궁지에 몰아넣어야 한다고 재촉했다.
이에대해 오닐 의장은 민주당의회 간부회의에서 "워싱턴에서 나보다 더 레이건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일단 엉터리 공약이라도, 법안과 예산안을 제출한만큼 어느 의안보다 우선적으로 상정시켜 진지하게 심의한후 처리(부결)하는 게 야당의 임무 "라고 역설했다.
결국 레이건측의 끈질기고 파상적인 로비활동으로, 또 국민의 호응으로 관련의안들은 모두 의회를 통과했고 얼마후부터 레이거노믹스는 경제를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참모들, 각료들은 대국민 소통과 야당의원 설득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오닐은 의회인답게 의사규칙대로 충분한 논의끝에 표결로 처리하는 의회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추석 전날 여당인 한나라당이 거대여당 답지 않게 어처구니없이 졸렬한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에서 재적과반수를 훨씬 넘는 다수 안정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이 절실하게 기다리는 의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작태를 연출했다. 우왕좌왕끝에 4조2천677억원의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다.
추경예산안은 어떤 내용인가? 유가 급등에 따른 전기·가스요금의 인상분 1조40억원을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유가환급, 양육비 보조, 농가비료대금 보조 등 그야말로 시급한 민생예산 아닌가.
국회예결위의 재적의원 50명중 한나라당이 29명이고, 국회재적의원 229명중 한나라당이 과반을 크게 넘는 172명인만큼 벌써 통과됐어야 했다. 그런데 예결위에서 한나라당 의원중 26명만으로 겨우 추경안을 통과시켰으나 통과시킨후에 예결위원1명을 교체한 것이 드러나 무효가 되어 본회의 통과가 까마득하게 된 것은 집권당의 능력과 자세를 의심케하고 있다.
이런 졸렬함을 보인 것은 원내대책도 부실한데다, 국회법규도 확인하지 않고 서두른 원내대표팀에게 실질적 책임이 있다. 다음 추경안의 중요성도 잊고, 끝까지 대야설득과 함께 전소속 의원들을 완전 장악, 비상대기 시키지 않은 지도부의 나태와 무기력증은 한심하기만하다.
더구나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가하게 지켜본 청와대쪽의 책임 또한 크기만하다. 추경안은 앞으로 정기국회에서 경제살리기 관련의안들을 처리하기위한 첫실험이었는데 벌써 대국민소통도 잊었단 말인가.
당연히 쇠고기 파동과 국회개원 흥정에 이어 어떻든 발목잡기라는 인상을 준 민주당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민생과 서민대책용인 만큼 적극적으로 통과에 나섰어야 했다.
무기력하고 고삐가 풀린 한나라당, 아직도 소통보다는 결국 국민이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안이함에 빠져있는 청와대, 그리고 국익과 민생보다는 정치투쟁과 발목잡기를 거듭하고 있는 민주당 모두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