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완 (논설위원)
요즘 우리 주변엔 믿음조차 치우친 현상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지만, 무책임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약하다는 데서 강제에는 한계가 있다. 무책임이 난무하면 믿음보다는 불신이 커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한동안 난맥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여론 형성의 윗선에 있어 가장 청렴해야 할 위정자로부터의 불신 만들기가 일반화된다면 바로잡기가 더욱 어려워지며,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하면 고착화된 치우친 믿음으로 불투명한 불확실한 미래만 있을 뿐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가 그래서 불안하다. '대통령과의 대화' 이후 대부분의 부류에서 태생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수성향의 집권당과 같은 성향을 보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에서 보이고 있는 믿음은 편 밀어주기식으로 비치고 있다. 진보로 대별되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한결같이 진정성을 의심한다. 대화 집단을 둘로 나누고, 시간과 참여한 국민도 달리했다면 질문과 답변의 뉘앙스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내용에 대한 판단과 반응이 극명하게 달라 평행선을 긋고 있다. 편가르기가 끝간 데 없이 지속되면 진실에 대한 수혜자가 돼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자가당착으로 흐르는 진실게임을 더 이상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 또한 믿음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추석 전 벌어진 추가경정예산안 사태에서 국민들은 재차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민생을 만신창이로 만들겠다는 선전포고'라며 을러대는 여나, '의회민주주의 20년 전 후퇴'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야 등 모두의 모습이 새삼스럽지가 않다. 자신이 놓인 입장에 따라 하던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민생도, 의회민주주의도 없어 보인다. 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다. 하지만 여론 주도층인 정치를 하는 부류나 이를 따르는 부류의 심리적 상태는, 진실은 하나인데 상황에 따라 믿음이 바뀔 수 있다는 데서 미래가 걱정된다.

'양치기 소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우화다. 우화를 읽은 사람들은 믿음이 깨질 때 큰 위기가 닥쳐온다는 교훈도 알고 있다. '양치기 소년'은 한 마을에서 일어난 소동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정부 등 정치권에 적용되면, 즉 정부 등이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게 되면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 정부를 믿고 안 믿고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동반하게 된다. 믿음을 잃게 되면 사회통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며, 믿음이 사라진 사회에서의 시장 기능 또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결국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지 못하게 되며, 선진국 진입은 상당기간 힘들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의 우리가 처한 현실로 치유해야 할 자화상이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는 말이 있다.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거울이라는 표면에 비친 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라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든, 자신이 일구어 낸 그 동안의 성과이든 사람들에게 비추어 자신을 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상황을 쫓는 믿음은 거울의 표면에 전착하는 허수에 불과하다. 믿음은 국민과 국가에서 나와야 하고, 믿음의 크기를 가늠해 거울로 삼을 줄 아는 것이 바른 정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신급돈어야(信及豚魚也)'. 주역에 나오는 문구다. 사람에게 믿음의 힘은 돼지나 물고기에까지 미친다는 의미로 믿음의 위대함을 일컫고 있다. 이 또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