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핸드볼 동메달 결정전. 헝가리에 33대 28로 5점이나 앞서 있던 종료시간 50초전의 작전시간은 의아하기만 했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감독의 목소리 "마지막 순간이야. (후배들이)이해해줘야 돼. 마지막 선배들이야. 정희·순영이·영란이…." 경기를 중계하던 방송스태프들도, TV앞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순간 귀를 의심했고, 심장의 박동이 탁 멈추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고참 선수들을 출전시켜 올림픽의 마지막을 코트에서 맞게해준 임영철 감독의 파격적 배려에 선수들과 국민들은 함께 울었다. '우생순'의 신화가 거저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경기를 지켜본 모든 이들이 한방에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렇게 금메달보다 더 값지게 재연출되었다.
그날 온 국민을 울린 장면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배려'다.
베이징에서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 열렸었다. 생중계도 없고, 언론의 주목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올림픽에서와 같이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 최선을 다했다.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남모를 좌절과 고통을 뛰어넘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음에도 그들만의 경기가 되었다.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훈련에 필요한 비용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수들, 기업은 물론 정부와 지자체로부터도 외면받는 선수들. 그들은 서럽다. 그러나 오늘도 이기기 위해 뛰고 달린다.
9월 1일까지 대전에서 치러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경기도 선수단은 모처럼 경기도다운 일을 해냈다. 16개 시·도 선수단이 20개 정규 종목에서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 결과, 경기도 선수단은 4개의 메달을 휩쓸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한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선수단만의 경사일 뿐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지난 8월 장애인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패널조사 결과 장애인실업률은 12.5%에 이르고 있으며, 수도권 장애인의 실업률은 16.7%로 타지역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적당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같아' 취업을 희망하지만 구직을 단념하고 있는 실망실업은 제외한 결과이다.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높은 살인적 실업률이다. 사회안전망이 잘 짜여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취업은 더 절박하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해소, 편의시설의 확충, 업무 편의를 위한 각종 보조기기의 지원 등에 대해 이미 장애인 차별의 금지, 편의시설을 위한 법률적 제도가 완성되어 있고 작업장에서의 작업 편의를 위한 보조기기 등이 무상으로 지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취업은 녹록하지 않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회가 바로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사회임에도 장애인체육에서나 장애인고용에선 아직 '배려'를 찾기 힘들다.
국가대표 핸드볼팀의 임영철 감독처럼 장애인 고용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배려'를 통해 연출할 감독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사회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