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진술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기 시작했다. 박도옥과 장달자보다 더 무서운 건 악의에 찬 그들의 진술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으려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 거짓된 진술이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기정사실이 되고 그것이 마을을 돌며 서서히 독을 뿜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오는 그런 기운이 때로는 주민들 모두를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독의 전령사를 자처하고 있었다. (중략) 나는 이장 부인의 얼굴에서 얼핏 어떤 낯익음을 느꼈다. 일방적인 주장, 상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뭔가 궁리를 하는 듯한 표정, 이미 모의를 통해 계획된 결론을 위한 말의 쏟아냄…. 언제부터인가 모두 서서히 같은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웃> 본문 221~222쪽에서, 주영선 지음, 문학수첩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