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달 2일 개봉하는 영화 '모던보이'도 줄거리가 비교적 단순한 만큼 두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보이는지가 승부처다.
때는 1930년대. 두 인물의 이름은 해명(박해일)과 난실(김혜수)이다.
바람둥이에 부유층이며 조선총독부 1급 서기인 해명은 시대의 암울함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별명은 '낭만의 화신'. 모던한 시대에 신여성들과 즐기며 사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꿈? 한때 일본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희미하다.
해명과 달리 난실은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 난실은 모던한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모던 걸'이지만 비밀이 너무 많아 실체를 알기 어렵다.
이름이 로라인줄 알았더니 때로는 나타샤로 불리기도 하고 아사코라는 일본 이름도 있다. 가수 뿐 아니라 양장점의 디자이너이기도 한 난실의 직업은 왠지 따로 있을 것 같다.
해명이 난실을 처음 만난 곳은 모던 클럽이다. 난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본 해명은 첫눈에 반해 곁을 맴돈다. 드디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고 느끼는 순간 난실이 싸 준 도시락이 그가 일하는 총독부에서 폭발하고 난실은 해명의 물건들을 가지고 사라진다.
이제 앞뒤 안가리고 난실을 찾아 나선 해명. 하지만 뒤를 쫓을 수록 난실의 정체는 잡히지 않고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는 말까지 들린다. 남편은 상하이를 주름잡던 미남자 '테러 박'이란다.
눈치 빠른 사람은 초반에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난실의 실체는 독립운동가다. 난실이 세상에 무관심한 해명과 명확히 대비를 이루는 인물인만큼 영화의 전개도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친일파 아버지 덕에 풍요롭게 사는 해명은 난실의 뒤를 쫓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독립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해피엔드', '사랑니'를 만들었던 정지우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준 솜씨대로 이 영화의 단순한 줄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매력적인 화면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은 꽤 세련되게 드러나며 두 인물이 애정을 나누는 장면도 감각적이다. 비슷한 나이 배우들 중 가장 듬직한 연기자 중 하나인 박해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감정의 변화를 꼼꼼하게 잘 표현했으며 김혜수도 '팔색조'라는 홍보문구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웰메이드' 영화인데도 영화가 힘있게 전개되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화학반응이 그리 크지않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난실은 해명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팜므파탈이 되기에 힘이 부쳐 보이고, 두 인물의 애정신 역시 나중에 해명이 변신하는 동기가 되기에는 임팩트가 약하다.
영화의 장점은 이보다는 과거를 재현해내는 실력에 있다. 영화 속 1930년대의 모습은 비슷한 시대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에 비해 월등하다. 서울역에서 남대문, 명동과 종로, 경복궁 주변의 총독부까지 영화는 당시 서울 도심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재현된 과거의 공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에 비해 요즘 사람들이 그대로 옮겨진 것처럼 모던하다. 여기에 해명의 차량이나 사는 집, 가구들 역시 그시대의 느낌이 잘 묻어 있으면서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2000년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인 이지형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가 원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