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일본에 있는 한국인을 재일동포, 미국은 재미동포, 그런데 중국에 있는 한국인을 재중동포라 하지 않고 조선족이라 한다. 중국의 여타 소수민족과 달리 100여년을 경과하면서도 유일하게 중국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민족이 조선족인 것이다.
얼마전 중국에 다녀왔다. 그곳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민족고유의 건축양식으로 집단마을을 조성, 조선족만의 학교를 세워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고, 조선족끼리의 혼인을 당연시 하여 가능한 자녀를 많이 낳아 조선족의 영역을 넓히고, 민족의 뿌리를 계승함을 긍지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타고난 근면성으로 농토의 개간 등으로 경제력을 형성하여 스스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중국에는 옌볜이라는 조선족 자치주가 있다. 지린성내의 4개 시와 2개 현으로 구성된 옌볜에는 조선족의 인구가 약 200만명 이상이 된다. 현지 동포들 말로는 한국전쟁때에 몇십만명이 사망했다 한다. 그래서 '인구가 늘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우리는 6·25전쟁 당시 아군이 압록강변까지 진격했을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해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배웠었다. 즉 수십만명의 중공군들의 인해전술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 결국에 후퇴한 것이 1·4 후퇴였다고 우리는 배웠었는데, 그때의 중공군 대다수가 바로 조선족이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해 북한에 대다수의 공업시설이 건설됐고, 그로인해 해방후 북한은 그 당시부터 70년대 중반까지 남한과 중국보다도 잘살았다. 동포 입장에서는 북한과는 지리적으로 연결된 관계로 왕래가 잦았다 했다. 동포들은 북한에 친인척이 살고 있으면 그 자체가 대단한 후광이었으며 '남한은 미제국주의 통치하에 학대와 굶주림하에 살아온 것으로 배웠다'한다. 당시에는 중국내 동포들 학교에서는 북한교과서를 그대로 받아 교육 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남의 나라 전쟁이기에 회피했지만 많은 남한출신의 조선족들은 미제국주의 자들에게 시달리는 남한의 동포들을 구하자는 일념으로 모병에 자원하여 총알받이로 산화된 슬픈 운명에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술수에 약소국의 비애가 찐하게 느껴졌다.
중국은 옌지를 배제하며 백두산 인근에 신도시와 신공항을 건설중에 있다. 이는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과 연결되는 사업인 듯하다. 훗날 한반도가 통일되면 필연적인 국경분쟁과 중국에 동화되지 않는 조선족의 경제적 위치상승에 대비하여 조선족 거점도시인 옌지의 발전을 견제하고자 하는 목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민감하면서도 중국의 역사왜곡에는 둔감하다. 중국 교육정책에 고구려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는 저의를 감안하면 향후 중국의 역사왜곡에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우리는 근자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부흥을 일으킨후 중국을 너무 쉽게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이러한 편견 등은 아주 위험한 사고의 발상이다. 현재의 중국은 중산층의 식생활은 물론 인공위성사업 등 일부 첨단 과학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고 돈많은 재벌의 숫자가 무려 3천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간과하지말고 13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쉽게 표출한 경시 풍조가 얼마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을 유발시켰다. 난관을 극복할 시기이다.
이제는 조선족을 재중동포라 하자. 국가적 차원의 장기적 대책을 수립, 어느땐 적국으로, 어느땐 우방으로 지내오며 수많은 전쟁과 영토분쟁을 겪은 중국을 이제는 필연적인 경쟁대상국으로 인식할 때다. 민족의 선인 중 광개토태왕과 연개소문 장군에 의한 대륙정벌의 드높은 기상을 이어받아 오로지 이들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우리의 지상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