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집안이야말로, 만주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의 증조부인 윤재옥이 1886년 함경도 회령을 떠나 지린성 룽징시 개산툰진 자동촌에 정착한 이래, 그의 할아버지인 윤하연이 1900년 룽징시 명동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 이곳에서 윤동주는 태어났다. 이곳 생가도 조부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듯 전형적인 조선족 전통 구조로 지어졌다. 기와를 얹은 10칸과 곳간은 중국식 집과 확연히 다르다. 현재 생가는 룽징시 정부에서 역사적 의의와 유래를 고려해 1994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윤동주는 이곳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듯 보인다. 시 '별헤는 밤'도 그가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수학하던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시 속 이국 소녀들은 1931년 윤동주가 중국인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시절에 알았던 중국 소녀들이 그 주인공이라는 게 정설이다.
자신이 고향을 그리워한 만큼, 윤동주는 고국의 문인들도 자신의 고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는 올해 '윤동주 문학의 밤' 행사를 일본 독자들까지 불러서 생가에서 개최했다고 한다. 이 단체는 '윤동주배 옌볜장사씨름대회', 조선족 어린이 시낭송 대회 등 윤동주를 매개로 조선족과 함께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문학이 조선족과 고국의 소원해진 관계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방증하듯 옌볜에서 한국과 조선족 문인, 학자들이 상호 교류하는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문학얼을 기리는 '옌볜 지용제'가 충북 옥천문화원 주최로 옌볜대학에서 열리기도 했었고, 세계시조사랑협회도 '한중 민족시 포럼'을 옌볜에서 열었다. '한국해외문화교류모임'은 '한중문화교류행사'를 열어 아예 옌볜에서 한·중작가 6인 합동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사진제공·후원=경기민예총
지린성/이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