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과 조선족을 상징하는 시인하면, 단연 윤동주가 떠오른다. 윤동주의 생가 역시 옌볜 룽징에 복원돼 있다. 9월초 우리가 윤동주 생가를 찾았을 때 이미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가 지천에 피어있었다. 생가 안에 있는 윤동주 추모제단에 먼저 참배한 후, 윤동주의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서선자 용인민예총 회원이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 룽징시 명동촌에 복원된 시인 윤동주의 생가.

윤동주의 집안이야말로, 만주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의 증조부인 윤재옥이 1886년 함경도 회령을 떠나 지린성 룽징시 개산툰진 자동촌에 정착한 이래, 그의 할아버지인 윤하연이 1900년 룽징시 명동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 이곳에서 윤동주는 태어났다. 이곳 생가도 조부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듯 전형적인 조선족 전통 구조로 지어졌다. 기와를 얹은 10칸과 곳간은 중국식 집과 확연히 다르다. 현재 생가는 룽징시 정부에서 역사적 의의와 유래를 고려해 1994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윤동주는 이곳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듯 보인다. 시 '별헤는 밤'도 그가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수학하던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시 속 이국 소녀들은 1931년 윤동주가 중국인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시절에 알았던 중국 소녀들이 그 주인공이라는 게 정설이다.

▲ 윤동주 생가에서 서선자 용인민예총회원이 윤동주의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낭독하고 있다.

자신이 고향을 그리워한 만큼, 윤동주는 고국의 문인들도 자신의 고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는 올해 '윤동주 문학의 밤' 행사를 일본 독자들까지 불러서 생가에서 개최했다고 한다. 이 단체는 '윤동주배 옌볜장사씨름대회', 조선족 어린이 시낭송 대회 등 윤동주를 매개로 조선족과 함께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문학이 조선족과 고국의 소원해진 관계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방증하듯 옌볜에서 한국과 조선족 문인, 학자들이 상호 교류하는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문학얼을 기리는 '옌볜 지용제'가 충북 옥천문화원 주최로 옌볜대학에서 열리기도 했었고, 세계시조사랑협회도 '한중 민족시 포럼'을 옌볜에서 열었다. '한국해외문화교류모임'은 '한중문화교류행사'를 열어 아예 옌볜에서 한·중작가 6인 합동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 압록강을 따라 펼쳐진 북녘땅을 스케치하는 류연복 판화가.
교류가 서로의 창작열에 '불길'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조선족들은 '선양시조선족문학회'등 여러 문학동호회를 꾸려 조선말로 된 신작을 활발히 발표중이다. 특히 선양시조선족문학회는 한국울주문화원과 재중 한국기업들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한국재외동포문학상, KBS문학상 등 국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문화예술인들 역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고미숙 문화평론가는 "새로운 문화를 만나면 새로운 예술이 싹트게 마련"이라며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도 청나라에 방문하기 위해 만주를 방문, 새로운 문화에 영감을 받아 고전 '열하일기'를 탄생시킨 것을 봐도 알지 않는가"하며 반문했다. 이를 증명하듯 만주를 방문한 경기민족예술인들은 백두산, 압록강, 랴오닝성 개주 고려성촌에 있는 건안성, 지린성 집안의 환도산성, 장군총 등을 캔버스에 담았다. 만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접목해 창작의 영역을 확장한 이들은 그 결과물을 지난 8~10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제공·후원=경기민예총

지린성/이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