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털의 조사에서도 심각한 정도가 보인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우리말 사용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40.9%가 '인터넷상의 언어 및 맞춤법 파괴'를 지적했다. 다음이 '은어와 비속어 남발' '소홀해지는 우리말 교육' '맞춤법이 틀려도 용인해 주는 분위기'순이다. '일상생활에서 맞춤법을 고려하는 편인가'에는 '아니다'를 선택한 학생이 32.2%에 달했으며, 이유로는 '그러는 편이 편해서' '이모티콘, 줄임말 등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다. 한글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바르게 사용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한글파괴를 걱정하기보다는 사용하기 편하면 된다는 식의 단순논리로, 바로잡지 않으면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글은 탄생 기록을 갖고 있는 유일한 문자' '제자원리가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 '문자의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음소 문자' '모음은 언제나 일정한 소리를 갖고 있는 문자' 등의 요소로 인해 한글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세계의 모든 문자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이를 뒷받침한 사건으로 큰 자랑거리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앞에서 예시한 뛰어난 활용성으로 인해 가능한 파생 문자의 부작용 또한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 중 으뜸을 물으면 한국인 대부분은 한글을 뽑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지키기가 또 하나의 독립운동이었다. 그렇게 지키고 가꾸며 이어온 562년, 이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조직한 한글학회 창립 100년을 맞아 한글의 모습은 앞으로의 100년을 걱정해야 하는, 주변상황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글학회의 운영실태에서도 우리말과 글에 대한 홀대와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운영비는 한글회관의 임대수입이 전부다. 정부지원금과 후원금은 예시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용 도서관과 연구실이 없어 한글 관련 자료를 창고에 쌓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외래어와 외국어는 차치하더라도 쏟아지는 인터넷 언어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2100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6천800여개의 언어 가운데 3천400~6천120개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주마다 1개의 언어가 사라지는 셈이다. 유네스코는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면 우리는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하는 도구를 영원히 잃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글이 유네스코의 '세계사멸위기 언어지도'에 포함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글을 경시하는 풍토가 이어지고 인터넷 언어와 영어 광풍이 세를 더하면 우리만의 역사와 문화를 탄생시킨 우리 언어의 정체성과 혼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화유산과 정신세계의 혼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한글에 대한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한다.
중국은 지난 올림픽에서 거대한 화(和)자를 만드는 쇼를 펼쳐 보였다. 전세계에 한자의 위상을 과시한 것이다. 이보다 우수하다는 긍지를 갖고 있는 한글이 외국어나 외래어, 심지어는 국적이 없는 외계어에 싸여 본성을 잃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낫놓고 기역자도 모름을 탓하지 못하는 세상이 와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