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경 (인하대 교수·아태물류학회장)
1996년 미국의 라이프매거진에 12세 파키스탄 어린이가 쪼그려 앉아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사진이 보도된 후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나이키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나이키는 심각한 경영위협에 직면하였다.

2001년 말 소니가 크리스마스를 겨냥하여 내논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 네덜란드 세관통과 중 수입 불가 판정을 받게 된다. 부품에서 중금속인 카드뮴이 허용 기준인 100PPM을 초과해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소니는 약 2억달러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2007년 세계적인 장난감 기업 마텔은 어린이에게 유해한 납 성분이 든 페인트를 칠했다는 이유로 한 해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중국산 장난감에 대해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 바 있다. 올해 '멜라민 분유'로 촉발된 멜라민 파동으로 중국산 수입식품에 대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중국산 제품 전반에 대한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수익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기업경영 패러다임이 이제 안전, 환경, 공정무역과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녹색경영, 가치경영, 지속가능경영과 같은 단어들이 기업경영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값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사회 전체,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기업'이 되는 것이 한층 중요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이 중심이 돼 녹색경영, 상생경영 등을 전개하고 있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자율적인 변화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가이드라인과 규제를 통해 일정 부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려는 추이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유럽연합(EU)의 전기전자 제품에 대한 법안들이다. 그 중 하나인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은 전기전자 제품 안에 납, 수은, 카드뮴, 크롬 등 6가지 유해물질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국내 대기업이 만든 가전제품이나 IT제품에 해당 유해물질이 함유돼 있으면 EU시장으로 수출을 할 수 없게 된다. 또 하나는 전기전자제품폐기물처리지침(WEEE)이다. 이는 생산자에게 사용 후 제품의 회수와 사후 처리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폐제품의 재사용 또는 재활용률을 높이는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춰야 이 지역에 수출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나아가 EU는 에코 디자인에 대한 지침(EuP) 초안도 마련하고 있다. 아직은 권고 수준이지만 이 지침은 제조자에게 제품 전 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포괄적인 환경영향을 평가하고 제품 설계가 환경 측면에서도 최적으로 이뤄졌음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가전제품의 경우 우리정부도 가전 3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폐제품을 회수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나 아직 충분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폐제품의 재사용이나 재활용 비율을 높이게 되면 아무래도 신제품 판매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추이에 부응하여 향후 산업 전반에 걸쳐 관련 규제들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 소비자, 사회, 나아가 지구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헌하는 '착한 기업'이 존경받고 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소비자들도 단순히 값 싼 제품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을 존중하는 기업과 그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소비패턴을 변화하는 작지만 큰 발걸음들이 필요할 것이다.